“추모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고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죠. 함께했던 동료들이 지켰어야 하는데 아쉽기도 하고….”
‘최저임금 1만원’을 처음으로 외쳤던 사회운동가 권문석의 5기 추모제가 2일 열린다. 권문석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권리를 빼앗긴 ‘알바생’들을 ‘알바노동자’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며 ‘알바연대’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35세에 세상을 떠났다.
고 권문석씨의 생전 사진. _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해 4주기 추모식은 올해와 달리 희망이 있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펼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최저임금 1만원’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펼쳐졌다. 그러나 꼭 1년 만에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다. 지난 5월28일 ‘최저임금 개악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벌써부터 ‘알바’들의 시급을 계산하면서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넣는 ‘꼼수’가 우려된다.
권문석과 함께했던 동료들은 “최저임금 1만원은 1만원이라는 단순한 금액”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저임금·장시간·불안정 노동체제를 바꾸려는 구호”라고 말한다. “중소상공인의 소득을 높여 1만원을 줄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고, 일하는 시간을 줄이며 일자리를 나누자”는 사회구조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구교현 ‘권문석 추모사업회 집행위원장’은 1일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정치권은 최저임금 1만원의 의미는 삭제한 채, 산입범위 조정으로 금액만 높이는 ‘거대한 사기극’을 벌였다”고 비판했다.
권씨의 짧은 삶은 언제나 노동자와 가까웠다. 신문사 문선공이었던 아버지는 전자조판이 도입되자 일자리를 잃었고, 어머니는 대학가에서 하숙을 치며 생계를 이어갔다. 1996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한 학생운동이 사회운동으로 16년간 이어졌다. 2012년 8월 첫 딸을 얻은 그는 이듬해 1월2일 기자가 아무도 오지 않는 ‘알바연대’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시급 4860원의 2배가 넘는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구호가 황당하다는 얘기도 따랐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권씨는 2013년 6월1일 홍익대 근처에서 ‘최저임금 1만원 아카데미 종일 특강’을 열었다. 긴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권씨는 10개월 된 아기를 먼저 재우고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30대 중반에 찾아온 급성 심장마비였다.
권문석이 외치던 ‘최저임금 1만원’은 더이상 백일몽이 아니다. 시간은 걸릴지언정, 변화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구교현 위원장은 “최저임금 1만원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라면서 “권문석은 없지만, 그가 했던 운동의 의미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설명했다.
권문석 추모사업회는 2일 서울 신촌에서 5주기 추모제를 열고, 고인의 활동과 삶을 기록한 책 <알바생 아니고 알바노동자입니다>(오준호, 박종철출판사)를 펴낸다. 참가자들은 이날 “권문석의 이름으로 최저임금 삭감법 반대한다”는 취지로 대통령의 ‘최저임금 삭감법’ 거부권 행사를 요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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