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번째 치러진 전국동시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성향의 후보들이 2014년에 이어 다시 압승했다. 2010년 6명 당선으로 시작된 ‘진보교육’ 열풍은 2014년 13명이 당선되면서 ‘돌풍’으로 이어졌다. 진보진영은 올해에도 17개 시·도에서 지난 선거와 비슷한 수준의 당선인을 배출할 것으로 보여, 진보교육 철학이 교육 현장의 확고한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시·도 교육감 선거의 또 다른 특징은 ‘현직의 약진’이다. 서울 조희연 후보, 경기 이재정 후보, 강원 민병희 후보, 충남 김지철 후보, 충북 김병우 후보, 대전 설동호 후보, 세종 최교진 후보, 전북 김승환 후보, 부산 김석준 후보, 경남 박종훈 후보 등 최소 10명의 현직 교육감이 다시 각 교육청 수장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강원의 민 후보와 전북의 김 후보는 3선이 확실시된다.
■ 교육계 보수 텃밭도 균열
교육감 선거 후보자들에겐 정당·기호가 부여되지 않고 투표용지상의 후보자 이름도 선거구별로 다르게 배치됐다. 게다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등 대형 이슈와 광역지자체장 선거에 밀려 ‘깜깜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진보·보수의 색채만은 명확히 구분해 투표를 한 것으로 보인다. 친환경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상징되는 진보교육 정책에 대한 지지는 꾸준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교육계 ‘보수 텃밭’의 균열도 감지됐다. 진보 진영이 압승을 거둔 2014년에도 대구·대전·경북·울산에서는 보수 성향 후보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대구·대전·경북에서 모두 보수 후보와 진보 후보가 개표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다. 울산에서는 지난번과 달리 진보 진영인 노옥희 후보의 당선이 확실하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진보 교육감 시기의 학교현장 변화에 대해 다수의 국민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면서 “특히 혁신학교에서는 기존 학교와 다른 생활지도와 수업이 가능했고, 학교 내 민주적 소통과 학생 참여 강화 면에서도 진전이 있었으며, 이러한 변화가 또 한 번 성공의 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문재인 정권’에 기댄 선거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이번 교육감 선거는 관심이 크지 않았고 후보자 개인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면서 “현 정권에 대한 높은 지지율과 이를 지탱하고 있는 진보 진영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가 진보의 승리로 이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 3기에 접어드는 혁신교육
진보 진영이 교육현장을 계속 진두지휘하게 되면서 무상급식 등 무상교육과 혁신학교 정책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에서 시민의 보편적 권리를 확대하고 유아교육에 대한 공공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진보 진영의 철학도 구체적으로 실현될 것으로 전망된다.
무상급식을 넘어선 무상교육은 진보뿐 아니라 보수 후보들도 내건 공약이다. 교복·체육복·수학여행·입학금·수업료·체험학습·교과서비 등의 학부모 부담을 없애는 실험이 앞으로 4년간 각 지역에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초·중등학교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는 지역에서도 친환경 식자재, 고등학교로의 무상급식 확대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무상급식 비율이 50~60%로 전국 최저 수준인 경남·울산·대구에서 보수 후보들도 친환경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2009년 김상곤 경기교육감이 처음 선보였던 혁신학교 바람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혁신교육 3기’에서 각 진보 교육감들은 혁신학교의 숫자를 늘리기보다는 혁신학교에서 확인된 성과를 공교육 일반에 확대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혁신학교는 입시 위주의 획일적 교육에서 벗어나 각 학교 특색에 맞는 맞춤형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며 일방적 강의를 탈피해 소규모 토론 중심의 수업을 강조하는 학교다. 전국에 자리 잡은 혁신학교는 올해 3월 기준으로 1340곳에 이른다. 서울형 혁신학교, 행복더하기학교(강원), 빛고을혁신학교(광주), 행복공감학교(충남), 행복씨앗학교(충북), 행복학교(경남), 무지개학교(전남), 다혼디배움학교(제주) 등으로 각 지역마다 이름은 다르다. 당선이 유력한 서울 조희연 후보는 혁신교육을 일반학교에도 전파하겠다고 약속했고 경기 이재정 후보도 혁신교육지구를 경기도 전 시·군으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당선이 유력한 전국 진보 교육감 후보들은 지난달 17일 ‘민주진보교육감 광주 선언’을 통해 평화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 비무장지대(DMZ) 생태교육, 남북 학생 평화축제, 공동수업 등을 약속했다. 남북 간 냉전이 해소되면 교육현장의 ‘평화 물결’도 기대해볼 만하다.
조희연, 첫번째 ‘재선 서울교육감’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직선 서울시교육감으로는 최초로 4년 임기를 끝냈다.” 지난 4월 조희연 당시 서울시교육감은 재선 도전을 선언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그는 여기에 ‘재선에 성공한 첫 서울시교육감’이라는 타이틀도 추가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첫 도전에서 그는 진보진영 단일후보이긴 했지만 인지도가 미약한 학자일 뿐이었다. 다만 운이 좋았다. 당시 선거에서 선두를 달리던 고승덕 후보의 딸이 “교육감 자격이 없다”며 아버지를 비판했다. 여기에 같은 해 4월16일 벌어진 세월호 참사의 영향으로 안전보다 입시 결과에만 몰두하는 보수정권의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도 확산됐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13일 서울 서대문구 선거사무실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보며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조 후보는 천신만고 끝에 ‘막판 역전극’으로 서울교육의 수장에 올랐다. 교육감으로 지내는 동안 박근혜 정권과 내내 대립해야 했다. 정부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에 넘기면서 격한 갈등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사찰을 당했고, 교육부의 갑작스러운 감사도 받아야 했다. 교육감 임기 4년 중 2년8개월간은 고승덕 전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재판도 받아야 했다. 2016년 말, 벌금 250만원형의 선고를 유예받아 교육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측근인 전 비서실장 조모씨가 뇌물 수수혐의로 구속되는 사건도 있었다.
고난이 계속됐던 과거와 달리 재선 가도는 순조로웠다. 이번 선거의 진보 단일화 경선룰은 그에게 불리했다. 4년 전과 달리 여론조사 반영 비율이 10%포인트 줄었고 첫 출마자에게는 득표율의 10%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받아들였고 여유있게 단일후보가 됐다. 지지율 조사에선 중도 조영달 후보, 보수 박영선 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한때 조 후보와 박 후보의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이 5%를 넘기지 않아 선관위 주최 TV 토론회에 조 후보가 홀로 나올 뻔하기도 했다. 다만 박 후보가 보수 결집을 시도해 3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으나 조 후보의 재선에 위협이 될 수준은 아니었다.
조 후보는 자신의 방식을 ‘조용한 변화, 일관된 혁신’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2014년 그는 자율형사립고와 외고 등의 일반고 전환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대신 단계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조 후보는 “자사고 폐지를 세게 밀어붙였다면 국민적 의제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까지 공약으로 내걸었다. 조 후보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와 1994년 참여연대를 조직해 초대 사무처장을 지낸 인연이 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시절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후보와 함께 성공회대 NGO대학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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