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전 서울 강북구 삼양초등학교 4학년 5반 과학시간. 학생 22명의 눈이 총같이 생긴 기계로 쏠렸다. 몸에 해로운 화학물질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알 수 있는 엑스선형광분석기(XRF)다. 이날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과 박수미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사무국장이 일상 속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일일교사로 나섰다. 배성호 담임교사의 제안으로 이날 수업은 시작됐다.
박 사무국장이 체육시간에 흔히 쓰는 농구공에 분석기를 갖다댔다. 30초 정도 지나자 비소, 브롬(브로민), 카드뮴 등 중금속이 들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카드뮴은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이 정한 기준을 초과했다. 어린이가 쓰는 제품은 카드뮴 수치가 75㎎/㎏을 넘어서는 안 되는데 이 공은 133㎎/㎏로 나타났다.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쓰는 물건은 어린이 기준에 맞추자고 하면 안 될까요? 카드뮴이 이 속에 들었다고 해서 손에 묻어나진 않아요. 하지만 농구공에 기대어 침 흘리면서 자다가 잘근잘근 씹는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하는 거죠.” 김 실장이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줬다.
세 종류의 야구장갑은 측정 후 각각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 딱지가 붙었다. 초록색은 ‘안전’, 노란색은 ‘조금 위험’, 빨간색은 ‘위험’을 의미한다. 초록 딱지가 붙은 장갑은 동물 가죽으로 만들어져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나머지 두 개는 PVC(폴리염화비닐) 재질이다. PVC에 첨가되는 물질 중에 내분비계를 교란시키는 환경호르몬이 있을 수 있다. 빨간 딱지가 붙은 장갑에선 중금속도 확인됐다.
한 학생이 가져온 분홍색 지갑 안쪽에서는 납이, 유명 캐릭터가 그려진 반창고 포장재에서는 카드뮴이 나왔다. 아이들이 너도나도 측정해달라고 내민 물건 중 레고블럭, 실내화, 포장랩, 스티커 등에는 초록 딱지가 붙었다. 김 실장은 “너무 고마운 일이에요. 예전에는 빨간 것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선생님과 여러분들처럼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있어서 좀 더 안전한 재료를 사용하게 된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쁜 물질이 없으면 나라가 발전할 수 없어서 그 물질을 꼭 써야 한다면요?” 한 학생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22명 중 4명이 ‘안전보다 발전이 중요하다’는 의견에 동감하며 손을 들었다. 김 실장은 “가족이나 친구가 나쁜 물질 때문에 피해를 입는다면 어떨까요?”라고 되물었다. 떠들썩하던 교실이 조용해졌다. 김 실장은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예비조사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을 들려줬다. 당시 기업들은 가습기살균제의 위험성을 몰랐다고 했으나, 사실은 위험을 확인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안전하게 하려면 돈을 많이 써야 하잖아요.” 몇몇 아이들이 말했다. “그럼 안전을 위한 비용은 누가 내야 할까요”라는 김 실장의 질문에 나라, 대통령, 국민, 기업 등 다양한 답이 나왔다. 김 실장은 기업의 책임을 강조했다. “누군가에게 피해가 갈지 모르는데, 비용을 아끼다가 사람을 다치게 만들어선 안 되는 거죠.”
일일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딱 한가지만 기억해달라고 했다. ‘위험하다고 써있지 않으니 안전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안전하다는 말이 없으니 위험한 건 아닐까’라고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가지고 노는 장난감인 ‘액체괴물’에는 ‘어른의 보호하에 사용해야 합니다’ ‘입에 넣지 마십시오’라고 경고문구가 써 있지만 얼마나 안전한지는 알 수 없다. 김 실장은 “기업들은 이 제품이 이런저런 이유로 안전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해요. 사람들이 안전에 대한 인식을 바꾸면 기업들도 안전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라고 했다.
한 학생은 수업 소감문에 “선생님은 PVC 플라스틱을 우리가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도 나중에 미안하다고 하지 않게 PVC 플라스틱을 없애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썼다. 배 교사와 학생들은 국어시간에 대한농구협회에 보낼 편지를 써볼 계획이다. 어린이 건강을 위해 농구공의 중금속 기준을 강화해달라고 말이다. 배 교사는 “수업에서 다룬 내용을 어떻게 다른 교과와 연계할지 연구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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