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당시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총대’를 메고 나섰던 국사편찬위원회가 8일 “구성원 모두의 마음을 대표하여 국민 여러분과 특히 역사학계 및 역사교육계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가 백서 발간을 끝으로 활동을 마무리한 8일 국사편찬위원회 조광 위원장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려 “역사 전문기관으로서의 사명과 정체성을 망각하고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함으로써 잘못된 정책 추진의 공범자가 되고 말았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추진될 당시의 국사편찬위원장은 김정배 고려대 명예교수였다.
조 위원장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학계와 시민단체 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였던 정책이었고, 현대 민주사회에 있어서는 국가가 역사 해석을 독점할 수 없다는 역사학계의 일반 상식에도 반하는 것었다”면서 “그럼에도 국사편찬위원회는 국정 역사교과서의 편찬 책임기관으로 지정되어, 집필진을 구성하고 내용을 개발하는 등 교과서 편찬에 실무 역할을 수행했다”고 편찬위의 과오를 인정했다.
그는 특히 “국사편찬위원회가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드리고 학계와의 신뢰 관계를 무너뜨린 점을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 위원장은 과거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대해 “역사교육과 과거를 둘러싼 공공의 기억이 더 이상 국가권력에 의해 독점·왜곡될 수 없으며, 학계와 시민사회의 자율성에 기반을 두어야 함을 분명히 알려준 사건이었다”면서 “이번 사태가 주는 교훈을 깊이 새기고 역사 연구의 토대를 다지며 학계를 지원하는 업무에 전념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재차 강조했다.
조 위원장은 국사편찬위의 쇄신을 이어가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역사 교과서 추진 부서를 해체하고 해당 업무를 폐지하는 법적·제도적 조치를 마무리했다”면서 “뼈저린 반성과 성찰을 통해 기관 본연의 사명을 재확인하고 국가기관으로서의 공정한 역할 수행과 위상 재정립을 위한 기관 혁신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 역사교과서가 만들어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청와대는 2015년 초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기 위해 국사편찬위원장으로 김정배 고려대 명예교수를 임명했다. 그해 국사편찬위원회는 국정 역사교과서의 편찬 책임기관으로 지정됐고 김정배 전 위원장이 집필진을 선정을 주도했다. 교육부가 작성한 예비명단을 김정배 전 위원장이 참고해 후보자 목록을 작성하면 청와대가 이를 보고받아 낙점하는 식이었다.
국사편찬위가 만든 국정 역사교과서 검토도 엉망이었다. 초고본의 고려사·조선사는 외부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고 현대사 외부 검토자 중에는 역사학 전공자가 없었다. 교과서 검토과정엔 교육부의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이 지속적으로 개입했고, 구체적 문장을 만들어 국사편찬위원회에 수정지시를 하기도 했다. 김정배 전 위원장은 교육부의 이러한 지시를 받아 집필진 동의 없이 수정본을 만들었다.
2016년 1월 교육부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최종 승인했다. 그러나 전국 5249개 중·고등학교 가운데 단 세곳만이 사용하겠다고 나섰으며, 그마저도 곧 철회하거나 학부모·학생의 반발 등이 이어져 실제 수업에 활용되지는 않았다.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국정 역사교과서는 폐지됐다.
국사편찬위원회 조광 위원장 사과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를 결정한 이후, 곧바로 이어진 진상조사가 금번 백서 발간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의 전모와 당시 자행되었던 위법?부당한 여러 조처들이 낱낱이 밝혀졌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학계와 시민단체 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였던 정책이었고, 현대 민주사회에 있어서는 국가가 역사 해석을 독점할 수 없다는 역사학계의 일반 상식에도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국사편찬위원회는 국정 역사교과서의 편찬 책임기관으로 지정되어, 집필진을 구성하고 내용을 개발하는 등 교과서 편찬에 실무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저희는 역사 전문기관으로서의 사명과 정체성을 망각하고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함으로써 잘못된 정책 추진의 공범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국사편찬위원회가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드리고 학계와의 신뢰 관계를 무너뜨린 점을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우리 기관 구성원 모두의 마음을 대표하여 국민 여러분과 특히 역사학계 및 역사교육계에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 이후 국사편찬위원회는 역사 교과서 추진 부서를 해체하고 해당 업무를 폐지하는 법적?제도적 조치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또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에 성실히 응하였습니다. 진상조사 결과에 뒤따르는 교육부의 조치 또한 충실히 이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뼈저린 반성과 성찰을 통해 기관 본연의 사명을 재확인하고 국가기관으로서의 공정한 역할 수행과 위상 재정립을 위한 기관 혁신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추진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사 연구에 필요한 각종 역사 자료를 조사?수집하고 가치 있는 사료를 연구?편찬함으로써 한국사 진작과 보급에 기여하는 기관 본연의 책무에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건은 역사교육과 과거를 둘러싼 공공의 기억이 더 이상 국가권력에 의해 독점·왜곡될 수 없으며, 학계와 시민사회의 자율성에 기반을 두어야 함을 분명히 알려준 사건이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번 사태가 주는 교훈을 깊이 새기고 역사 연구의 토대를 다지며 학계를 지원하는 업무에 전념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2018. 6. 8.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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