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했다는 이유로 ‘노조 아님’ 통보를 받았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문재인 정부 출범 1년1개월만에 처음으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과 마주앉았다. 김 장관은 이 자리에서 법외노조 통보를 철회할 지에 대해 “법률 검토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외노조 문제 해결 방법을 놓고 대립했던 정부와 전교조가 입장차를 좁히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김 장관은 19일 오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과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전교조가 요구하고 있는 ‘법외노조 통보 철회’에 대해 “장관 법률자문단 변호사들에게 자문을 받아보겠다”며 “다만 법률적으로 (철회가) 가능하다고 해도 내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여러 의견을 듣겠다”고 말했다. 전교조 요구대로 법외노조 문제를 바로 풀겠다고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기존 정부 입장에서는 한 발 나아간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전교조가 냈던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 행정소송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기 때문에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행정조치를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전교조는 대법원 판결과 상관없이 2013년 노동부가 내렸던 ‘교원노동법상 노조 아님’ 통보를 직권으로 취소하기만 하면 다시 노조 지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도 전교조는 법외노조 문제를 풀기 위한 일정표를 내놓으라고 노동부에 요구했다. 조 위원장은 면담에서 김 장관에게 “정권 초반에 전교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 벌써 1년이 지났고, 법외노조가 된 뒤로 해고자가 34명이나 발생했다”며 “이 자리에서 당장 직권취소 입장을 밝혀주시면 좋겠지만 어렵다면 늦어도 이달 말까지는 전교조가 법적 지위를 회복해 교사들이 교단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전교조는 이달 안에 정부가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다음달 6일 연가투쟁을 실시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전교조 지도부가 노동부 장관을 만난 것은 2014년이 마지막이었다. 전교조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5차례에 걸쳐 노동부 장관 면담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김 장관과 조 위원장이 이달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만나 간담회 일정을 잡으면서 양측 만남이 이뤄졌다.
면담 분위기는 훈훈했다. 김 장관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당 공천과 관계없이 전교조 출신 교육감이 열 분 당선된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며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전교조 관련 사건을 놓고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전교조 입장에서는 너무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사실이라면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전교조에 애정을 갖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법외노조 철회 법률검토’ 하루만에 무산… 전교조 “총력투쟁”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처음으로 만나 법외노조 문제를 논의한 지 하루 만에 청와대가 “법외노조 직권취소는 정부가 할 수 없다”고 선을 긋자 전교조가 강하게 반발했다.
전교조는 20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려는 주무장관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든 청와대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전날 김 장관은 취임 후 처음으로 전교조 집행부와 면담한 뒤 “법외노조 통보 직권취소가 가능한지 법률 자문을 받아보겠다”고 밝혔다. 전교조에 따르면 김 장관은 면담에서 법률자문을 받은 뒤 청와대와 협의해보겠다고 말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에 대해 “전교조가 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했지만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직권취소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직권취소를 검토한다는 해석이 나오자 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김 대변인은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는) 본안 사건을 다루는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받아보는 방법, 노동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방법 이 두 가지밖에 없다”며 “그런데 대법원 판결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정부 입장은 관련 법령을 개정해 이 문제를 처리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무장관이 ‘직권취소 불가’에서 ‘법률 검토’로 한발 나아간 입장을 내놓은 지 하루만에 청와대가 직권취소 가능성은 없다고 못박자 전교조는 ‘총력투쟁’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이날 전교조 중앙집행위원들은 청와대의 책임있는 답변을 요구하며 삭발식을 진행했다. 지난해 11월 법외노조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한 지 8개월만이다. 전교조는 자체적으로 법률자문을 받은 결과 노동부의 2013년 법외노조 통보는 행정행위이므로 정부가 결단하면 곧바로 취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교조는 교원노조법 개정을 통해 문제를 풀겠다는 김 대변인의 발언에 대해서도 “야당 반대로 교원노조법 개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문제해결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교조는 이달 27일 권역별 촛불집회, 다음달 6일 전 조합원 연가투쟁을 벌이는 등 법외노조 문제 해결을 위해 총력투쟁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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