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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KBS 도청 의혹 기자, 녹음을 하든 녹취를 하든 취재해오란 지시 받았다”

KBS·MBC정상화시민행동 관계자들이 지난 7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KBS의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을 엄정히 수사할 것을 검찰에 촉구하고 있다. 최미랑 기자

KBS·MBC정상화시민행동 관계자들이 지난 7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KBS의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을 엄정히 수사할 것을 검찰에 촉구하고 있다. 최미랑 기자

2011년 민주당 도청 의혹 파문 당시 도청 당사자로 지목받은 KBS 취재기자가 “녹음을 하든 녹취를 하든 취재해오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KBS 내에 당시 민주당 회의에서 오간 발언 내용을 담은 보고서 형태의 문건이 존재했다는 진술도 진상조사 결과 드러났다. KBS 기자협회 진상조사위원회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스카우트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6월부터 조사해 확인한 사실들을 공개했다.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은 2011년 수신료 인상과 관련된 민주당 비공개 회의에서 나온 참석자 발언을 당시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공개한 사건이다. 당시 민주당은 당대표실 주변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KBS 정치부 ㄱ기자가 회의 내용을 몰래 녹음해 한나라당에 넘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과 경찰이 수사를 했으나 핵심 증거물인 이 기자의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확보하지 못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됐다. 서울남부지검은 최근 KBS 새노조로부터 이 사건 재수사를 요구하는 고발장을 접수받고 지난 7일 고발인 조사를 쳤다. 

조사결과 당시 ㄱ기자는 정치부 중견 ㄴ기자로부터 회의를 녹음이나 녹취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위는 ㄴ기자로부터 “내가 최대한 취재하라고 지시했다. 녹음이라도 하든지, 녹취가 가능하면 녹취도 하라고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ㄴ기자는 취재내용을 보고받아 바로 윗선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또 민주당이 도청 의혹을 제기한 뒤에는 ㄱ기자가 자신이 아닌 더 윗선의 선배와 사건 관련 대화를 직접 나눴다는 사실도 조사위에 진술했다. 

조사위는 “3년차 막내기자에게 선배가 취재지시를 하면서 녹취, 녹음같은 단어까지 사용했다면 압박을 느꼈을 수 있다”며 “ㄱ기자가 부담을 가지고 취재를 하지 않겠냐는 추정을 할 수 있어 중요한 단서라고 본다”고 말했다. 조사위는 ㄱ기자와도 면담을 했지만 취재 방식 등에 대한 진술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KBS 내에 당시 민주당 회의에서 나온 구체적 발언 내용이 들어간 보고서 형태의 문건이 존재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조사위는 당시 KBS 보도국 국장급 간부로부터 “정치부의 한 기자에게 사건이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봤고, 이 기자로부터 KBS가 작성한 문건을 받아봤다”는 진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간부는 문건에 민주당 비공개 회의 내용이 담겨 있었고, 녹취록은 아니었지만 회의 참석자의 이름과 핵심 발언내용, 그리고 내용을 분석한 글들이 있었다고 조사위에 말했다. 

KBS 기자협회는 “강한 취재지시가 있었던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지 (KBS가) 회의 내용을 입수했을 가능성이 크고, 이를 문건으로 작성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라며 “앞으로 조사를 계속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