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

<무한도전>에 창조경제 다뤄달라, 서민 교수는 경향신문 필진이라 안 돼...MBC의 '블랙리스트'

총파업 11일째를 맞은 언론노조 MBC본부 노조원들이 14일 서울 상암동 사옥 로비에서 집회를 열고 ‘국정원의 MBC장악’ 관련 사례를 폭로하고 있다./정지윤기자

총파업 11일째를 맞은 언론노조 MBC본부 노조원들이 14일 서울 상암동 사옥 로비에서 집회를 열고 ‘국정원의 MBC장악’ 관련 사례를 폭로하고 있다./정지윤기자

<무한도전>에 ‘창조경제’를 다뤄달라, 김제동씨 프로그램에는 MC와 제목을 바꾸라, 윤도현씨 라디오 DJ 복귀 안 된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의 외압에 따라 MBC 안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총파업 중인 언론노조 MBC본부는 14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 블랙리스트’ 공개 후 자체 조사한 블랙리스트 작동 사례를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예능본부 최행호 PD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을 홍보할 수 있도록 <무한도전>에서 관련 아이템을 방송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경영진을 통해 김태호 PD에게 전달됐다”고 폭로했다.

최 PD와 이날 공개된 노보에 따르면 당시 <무한도전> 담당 국장은 “창조경제 관련 협의를 하기 위해 청와대에서 만나자는 요청을 받았지만, 제작진이 직접 청와대로 가는 건 부담스러워 국장인 내가 서울 광화문의 창조경제혁신센터 사무실에 간 적이 있다”고 말했다. MBC 간판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은 비교적 외압에서 자유로운 편이었으나 창조경제 아이템을 다뤄 달라는 압박은 1년 동안 계속된 것으로 전해졌다.

[총파업 특보] MBC 파괴 공작 '판도라 상자' 열렸다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이 방송 출연에서 배제된 사례들도 공개됐다. 2009년 방송인 김제동씨가 메인MC를 맡았던 파일럿 프로그램 <오마이텐트>를 연출한 조준묵 PD는 “기획안 반응도 좋았고 시청률도 13% 선으로 높았는데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지 않았다”며 “1년 뒤 ‘MC와 제목을 바꾸자’는 제안만 내려왔다”고 말했다. 김제동씨는 2011년 가을부터 포맷이 비슷한 SBS <힐링캠프>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조 PD는 “편성이 계속 안 되면서 우리는 ‘MC가 더 잘했어야 한다’ ‘연출이 부족했다’는 식으로 서로를 탓했다”며 “스스로의 잘못으로 넘기고 어렴풋이 짐작하기만 했던 일이 며칠 전 블랙리스트로 구체화됐고, 그 날 김제동씨가 많이 울었다”고 털어놨다.

MBC 라디오 <두시의 데이트> DJ로 활약하다 석연찮은 이유로 하차한 가수 윤도현씨의 복귀가 좌절된 일도 있었다. 라디오국 한재희 PD는 “2013년 윤도현씨를 다시 <두시의 데이트> 진행자로 거의 확정지은 상태였는데 임원회의에서 반대해 무산됐다”고 말했다. TV 프로그램의 정치풍자도 줄줄이 한파를 맞았다. <웃고 또 웃고>의 정치풍자 코미디 ‘나는 하수다’, <명랑 히어로> 등이 잇따라 폐지됐다.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인물의 출연이 무산된 일도 있었다. MBC 총선기획단은 2015년 말 유시민 작가과 전원책 변호사의 토론 프로그램을 기획해 당시 보도본부장이던 김장겸 현 사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당시 김 본부장이 “전원책과 유시민은 안된다”며 정규재 한국경제 논설고문을 추천해 무산됐다. 유 작가와 전 변호사는 뒤에 JTBC <썰전>에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다.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김태호 PD "무한도전 멈춘 이유, <공범자들> 보면 안다"

지난해 3월 작곡가 김형석씨가 <복면가왕>에서 하차한 것 역시 그가 더불어민주당 총선 로고송을 만들고 문재인 지지 발언을 했기 때문이라고 PD들은 밝혔다. 기생충학자인 서민 단국대 교수는 <베란다쇼>에 출연하다가 “경향신문에 정치적으로 편향된 칼럼을 쓰고 있다”는 당시 교양제작국장의 발언 뒤 2014년 4월 하차했다.

외압이 계속되자 제작진과 방송인들이 스스로 캐스팅을 자기검열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드라마본부의 박원국 PD는 “2015년 한 프로그램 연출진이 배우 문성근씨를 캐스팅하려고 연락했는데, 문성근씨가 ‘스케줄은 괜찮지만 MBC에서 나를 안 좋아할테니 확인해보라’고 답했다. 실제로 사내에서 우려가 나오자 제작진이 그를 제외했다”고 말했다. 한 PD는 배우 김여진씨를 드라마에 캐스팅하려 했으나 김여진 측에서 “어차피 안 될 테니 그냥 하지 말라”는 답변을 들었다.

검찰은 국정원의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이날 국정원으로부터 박원순 시장 관련 문건,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의뢰서 등 2건을 송부받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