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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다고 생각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 해고된 KTX 승무원 노조 김승하 지부장이 말하는 ‘12년의 싸움’

남지원·이재덕 기자 somnia@kyunghyang.com

“우리가 싸우는 게 옳다는 생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KTX 해고 승무원들을 코레일이 특별채용한다는 노사 합의가 체결된 다음날,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39)의 표정은 밝았다. “합의를 마치고 서울역에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저희가 10년 전 쇠사슬로 몸을 묶고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싸웠거든요. 그 생각을 하니 실감이 나더라고요. 정말 오랜 세월이 흘렀구나…”

KTX 해고 승무원들을 코레일이 특별채용한다는 노사 합의가 체결된 다음날인 22일,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39)이 서울 문래동의 한 카페 앞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12년 동안의 싸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지부장은 “우리가 싸우는 게 옳다고 생각했기에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_ 김창길 기자


그는 오는 11월 회사로 돌아간다. 20대 초반에 입사했다가 2년 반 일하고 해고된 회사로 돌아가는 데에 꼭 12년이 걸렸다. 철도노조와 코레일은 2006년 정리해고된 뒤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던 KTX 승무원 180여명을 대상으로 ‘특별채용’을 실시하기로 21일 합의했다. 코레일은 올해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세 차례에 걸쳐 이들 중 복직할 뜻이 있는 사람들을 경력직 특별채용 방식으로 복직시킬 예정이다. 이들은 사무영업(역무)직에 신입직원과 같은 직급인 6급으로 채용된다. 꿈꿔온 대로 열차 승무원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분노와 눈물의 12년

이들의 잔혹사는 KTX가 개통된 2004년 시작됐다. 당시 철도청은 ‘지상의 스튜어디스’를 뽑는다고 홍보하며 새로 운행할 KTX 승무원을 공개채용했다. 수많은 승무원 지망생들이 민간기업인 항공사 대신 KTX 승무원을 선택했다. 입사 경쟁률이 14대 1이었다. 이들은 2005년 철도청이 공기업인 철도공사(코레일)로 바뀌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다. 김 지부장은 “우리를 교육한 사람, 업무를 함께한 사람, 지시·감독은 물론 징계한 사람도 모두 철도청 소속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약기간 2년이 끝나자 말이 바뀌었다. 코레일은 자회사인 KTX관광레저로 옮기면 나중에 자회사 정규직으로 바꿔주겠다고 했다. 김 지부장은 “국가가 취업사기를 친 셈”이라고 했다. 노조가 이를 거부하고 파업을 벌이자 코레일은 이적을 거부하고 복귀하지 않은 250여명을 해고했다.

지난한 싸움이 시작됐다. 단식과 삭발은 기본이고, 쇠사슬로 몸을 묶고 연좌농성을 하거나 서울역 뒤편 40m 높이 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달라지는 게 없자 승무원들은 2008년 법원에 해고가 부당하다는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2010년 승무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승무원들과 코레일의 직접 근로관계가 인정되는데도 이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계약을 갱신하지 않은 것은 해고로 볼 수 있다며 이를 무효라고 판단했다. 2심도 같은 결론을 냈다.

곧 회사로 돌아가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2015년 대법원이 “승무원과 코레일 사이 직접 근로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정반대 결론을 내리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해고 승무원들은 1심 판결 뒤 회사에서 받은 밀린 월급 수천만원을 토해내야 했다. 판결에 충격을 받은 한 승무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5월 공개된 법원행정처 문건에서 대법원이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한 정황이 발견됐다. 김 지부장은 “당시에도 너무 어이가 없는 판결문이라 조작됐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진짜였다는 증거가 나오니 정말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희생된 친구가 떠올라요. 부질없지만, 조금만 더 참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대체 누구한테 책임을 묻고 보상을 받아야 하나요.”

오영식 코레일 사장(왼쪽 두번째)과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오른쪽 두번째) 등이 21일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에 합의한 뒤 노사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제공

오영식 코레일 사장(왼쪽 두번째)과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오른쪽 두번째) 등이 21일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에 합의한 뒤 노사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제공

법원행정처 문건이 공개될 즈음 해고승무원들은 다시 서울역에 천막을 쳤다. 지난달 1일 오영식 코레일 사장을 만났고, 이달 초부터 다섯 차례의 교섭을 거쳐 일단 해고된 뒤 자회사에 고용된 적 없는 승무원 전체가 코레일로 복직하는 ‘절반의 승리’를 이뤄냈다. 교섭은 순탄하지 않았다. 회사는 처음에 “마지막까지 노조에 남았던 33명만 복직 대상으로 하자”는 안을 냈다. 김 지부장은 “남은 사람만 잘 되면 된다는 마음으로 싸웠던 게 아니다. 피해를 입은 모두가 함께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안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안전 책임지는 승무원, 직접고용해야”

“완전한 승리는 아니라 한편으론 마음이 무거워요. 열차는 너무 길고, 비행기처럼 승객을 한번에 태우는 게 아니고 수시로 사람들이 바뀝니다. 거기 대처하려면 인원이 많아야 하고 안전교육이 필요한데 회사는 ‘승무원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무이지 안전담당이 아니다’라고만 해요.” 김 지부장과 같이 노조를 끝까지 지켜온 정미정 총무부장(37)도 “완벽한 승리는 아니다”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직접고용된 승무원이 아닌 ‘본사 역무직’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KTX에서 일하는 승무원들은 코레일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소속이다. 일각에서는 해고자들이 “승무원이 아니라 본사 정규직 되려고 12년 싸운 것”이라 비난한다.

그러나 이들은 “승무원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코레일이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대 1000여명을 수송하는 18량짜리 KTX 열차 안에 안전을 담당하는 본사 정규직 승무원은 열차팀장 1명뿐이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최근 난동을 부리는 승객을 제지했는데, 사실 이런 사고를 수습하는 건 승무원 역할이예요. 지금은 장관도 자기 안전을 ‘셀프’로 챙겨야 하는 시스템인 거죠.”

해고 승무원들은 코레일이 자회사 소속 승무원들을 직접고용하는 것과 동시에 복직 문제도 풀리길 바랐다. 하지만 KTX 승무업무를 직접고용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사전문가협의회 협의가 올 하반기로 미뤄졌다. 또 승무업무가 직접고용으로 전환되더라도 별도의 복직 교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철도공사가 제안한 ‘선 복직 후 전환배치’ 방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노사는 부속합의서에 ‘본 합의에 따라 채용된 자가 향후 근무경력 분야로 희망하는 경우 절차에 따라 시행한다’고 명시해, 향후 승무업무가 본사 소속으로 전환되면 이들이 전환배치될 가능성을 열어놨다.

2006년 2월 마지막으로 기차를 탔던 이들은 다시 승무원으로 기차에 오를 수 있을까. “제대로 교육받고 기차에 한번 타보고 싶다”고 김 지부장은 말했다. “기차에 취객도 많고 흉기로 옆 승객을 협박하는 것 같은 사건도 가끔 있거든요. 경호원 수준으로 철저한 안전교육과 훈련을 받고 다시 승무원으로 일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