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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돈 벌기

"KTX도, 삼성 반도체도 풀렸는데...우리 심정은 '기다림'" 분향소에서 여름 견디는 쌍용차 해고자들

자그마치 10년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2000여명이 정리해고로,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던 2009년을 똑똑히 기억한다. 2015년 12월이 돼서야 쌍용차 노사는 단계적으로 해고자 복직을 추진하기로 합의했지만 말 뿐이었다. 복직 희망자 중 45명만이 일터로 돌아갔고, 남은 119명은 아직도 ‘해고노동자’로 불린다. KTX 해고승무원들이 12년 만에 제자리를 찾고, 삼성 직업병 분쟁도 해결이 코앞이라는 소식이 이어졌지만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아직도 거리에 있다.

22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길에서 열린 ‘쌍용차 연대의 날 문화제’에서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관계자들이 ‘정리해고 없는 세상’이라고 적힌 대형 플랜카드 위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잘 견디고 인내하는 것이 공장으로 돌아가는 과정 아닌가 생각해요.” 22일 서울 중구 덕수궁 돌담길.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김선동씨(50)가 말했다. 주말을 맞아 해고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날이었다. 앞뒤로 ‘끝낸다 해고’ ‘전원 복직’이라고 큼지막하게 쓴 조끼를 맞춰입은 이들은 이 날을 ‘위로와 연대의 날’이라 불렀다. 김씨는 “KTX, 반올림 동지들은 희망이 안 보이는데도 세상에 올바름을 알리면서 성과를 이뤄냈다. 이 뜨거운 더위 속에 있는 것도 결국 하나의 과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대량해고 이후 30명의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말 김주중씨의 죽음은 5년 만에 덕수궁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다시 세우게 했다. 고인의 초상화와 국화꽃 한 송이, 수박 한 통이 놓인 분향소에는 무거운 공기가 흐르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김씨는 “분향소에서 또 하루를 시작하는 심정은 ‘기다림’”이라고 했다.

일터에서 밀려난 많은 이들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이들에게 복직은 당연한 일상을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이은덕씨(47)는 “진작 해결됐어야 할 일들이 풀리는 것을 보면서 쌍차 문제도 크게 다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면서 “더 이상 사람을 잃는 슬픔은 없어야한다는 생각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규칠씨(43)는 “KTX 승무원,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 일은 정말 축하드리고 감사할 따름이다. 쌍차 문제가 해결되는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22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길에서 열린 ‘쌍용차 연대의 날 문화제’에서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관계자들이 ‘복직’이라고 적힌 얼음을 녹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22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길에서 열린 ‘쌍용차 연대의 날 문화제’에서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관계자들이 ‘복직’이라고 적힌 얼음을 녹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다시 일터로 돌아간 이들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판매실적이 좋지 않다며 동료들의 복직을 미루는 사측의 태도가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해 4월 복직한 조재영씨(53)는 일할 때에도 분향소 상황을 전하는 라이브 중계를 틈틈이 틀어볼 정도로 마음이 많이 쓰인다고 했다. 조씨는 “쌍용차 문제 해결은 사측과 노조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다. “사측과 조합은 해고자 복직 대신에 임금과 대출, 노후차량에 대한 혜택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조금씩 나누면서 해고자 문제를 풀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다림은 해고노동자 가족들의 몫이기도 하다. 해고노동자의 아내이자 해고자 심리치료센터 ‘와락’ 대표인 권지영씨(44)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이만큼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하지만 해고의 충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진다. 사회적 비용을 많이 치른 만큼 이제는 과감히 문제를 단순화시켜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실제로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의 고통은 심각함이나 피해규모로 보나 ‘사회적 재난’이었다. 일부의 공격과 그로 인한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분향소가 다시 세워질 때부터 보수단체, ‘태극기부대’ 회원들이 달려들어 물리적 충돌을 일으켰다. 해고자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이들의 비아냥을 듣는다. 하지만 함께 분향소를 지켜주는 이들도 많다. ‘힘내세요’라며 커피를 나눠주던 이명옥 평화어머니회 활동가(59)는 “해고노동자들이 상복입고 오체투지하고, 한겨울에 텐트 안에서 농성을 했는데도 30번째 죽음이 나왔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씨는 “어떤 죽음이 됐든 사회적 타살”이라면서 “하루 빨리 모두가 일을 되찾아 이 더위에 두번 만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매일 분향소를 지키는 시민 신영철씨(61)는 “‘빨갱이’라는 말은 억지로라도 참지만 ‘세월호 시체팔이’ ‘쌍차 시체팔이’라는 말은 참아내기 힘들다”면서 “그래도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해고노동자들와 시민들은 서로의 체온으로 커다란 얼음덩어리를 함께 녹였다. 그 속에는 두 글자가 숨어있었다.‘복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