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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왜 이래

[날씨가 왜 이래]경북 영천 40.3도...‘폭염의 마지노선’이 40도인 이유는?

40.3도. 24일 오후 3시27분, 경북 영천 신녕면의 자동기상관측장비(AWS)에 찍힌 기온이다. 한반도에서 최고기온의 ‘마지노선’이었던 40도를 올 여름 76년만에 넘어선 것일까.

서울 종로구 송월동의 서울기상관측소.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최고기온은 각 지역 관측소 잔디밭 지상 1.5~2m 높이에 설치된 자동기상관측장비(AWS)가 측정한 값을 바탕으로 하며, 서울의 경우 송월동 관측소가 기준이 된다. _ 경향신문 자료사진


기상청에 따르면 한반도 공식 최고기온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8월1일 대구의 40도였다. 1994년의 압도적 폭염이나 최근의 기후변화 추세를 보면 진작 깨졌을 법도 한데 그대로다. 1994년 공식 최고기온도 강릉 39.3도, 영천 39.4도, 밀양 39.4도 등으로 40도에는 미치지 못했다. 지난 23일 비공식기록으로 경북 경산 하양읍의 AWS에서 39.9도가 관측됐지만, 0.01도가 모자랐다. 영천 신녕면의 24일 기온 역시 비공식 기록이다. 일본에선 유례없는 폭염으로 전날 사이타마현에서 관측 사상 최고인 41.1도를 기록했으며, 도쿄도 처음으로 40도를 넘었다. 비슷한 위도인 일본과 달리 한국 기온이 40도를 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날씨가 왜 이래]경북 영천 40.3도...'폭염의 마지노선'이 40도인 이유는?

한반도의 위치와 지형 때문이다. 지표면 온도가 올라가면 뜨거운 공기가 위로 치솟는다. 지상과 5㎞ 상공의 온도차가 35도 넘게 벌어지면 대류 현상이 더 활발해진다. 5km 상공의 기온은 0도 정도이니, 지상이 35도를 넘으면 열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름철 폭염 때 기온은 35~40도 사이에서 움직인다. 지면이 고르고 쉽게 달궈지는 사막이라면 40도도 훌쩍 넘겠지만, 한국은 산지 지형이라 균질하게 가열되지도 않는다. 다만 지형적인 특수성이 겹쳐지면 40도에 육박하거나 넘을 수 있다. 대구나 경북 내륙 같은 분지 지형에선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힌다.

또한 중위도 지역에선 태양열이 강한 기간이 하지를 전후한 여름철만이어서 상대적으로 짧다. 적도의 열풍도 바다를 통과하며 식어서 온다. 중위도라는 위치, 산지가 많고 좁은 면적, 삼면이 바다라는 지형적 조합이 맞아 떨어지면서 40도를 쉬이 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이웃한 일본도 위도가 비슷하지만 덥고 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을 더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온이 조금 높다.

국내에서도 비공식 기록으로는 40도를 넘은 경우가 여러번 있었다. 공식 기록은 대표관측소를 기준으로 하지만, 설치 조건이 덜 까다로운 AWS에서는 조금 높은 기온이 관측되기도 한다. 2012년 7월31일 경산 하양읍에서 40.6도, 2013년 8월10일 울산 북구 송정동에서 40.3도를 기록했다. 올여름 영천의 기록도 마찬가지로 AWS로 관측됐다.

과거로 올라가면 1944년 8월1일 경북 영주에서 46도, 1942년 8월13일 경주에서 43.5도까지 올랐다는 비공식 기록이 있다. 태평양전쟁 와중이었기에 당시 상황을 신문이나 문헌 기록으로 살펴보기는 쉽지 않다. 기상청에도 당시 기록된 숫자만 남아있다.

경향신문 1982년 6월16일자 ‘71년간 자료 분석으로 본 기상 전망’ 기사에서 1944년 8월1일 경북영주에서 46도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경향신문 1982년 6월16일자 ‘71년간 자료 분석으로 본 기상 전망’ 기사에서 1944년 8월1일 경북영주에서 46도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세계기상기구(WMO) 기준으로 아시아 최고기온은 이스라엘 티라트뷔에서 1942년 6월21일 기록된 54도이다. 세계 기록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의 퍼니스크릭에서 1913년 7월10일 관측된 56.7도다. 역대 최고 열대야는 지난 6월28일 오만 쿠리야트에서 한밤 최저기온 42.6도로 기록됐다.

40도라는 숫자는 십진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숫자일 뿐, 기상학적인 의미는 없다. 하지만 40도는 ‘열대’의 기온으로 받아들여져 심리적 체감이 클 수 밖에 없다. 최근 일본의 기록적 폭염이나 기후변화 추세를 보면 한국에서도 ‘공식 기록’이 40도를 넘는 것은 시간 문제다. 2011년 발표된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보면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2050년까지 평균기온이 3.2도 오르고, 강수량은 16%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한반도가 아열대로 변하는 것이다.

폭염이 이대로 지속되면 올해가 기록 경신의 해가 될 수도 있다. 윤기한 기상청 사무관은 “올해는 장마가 일찍 끝나서 더위가 빨리 온데다 본격적인 더위는 7월 말부터이기 때문에 기온이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40도 공식 돌파가 유력한 곳은 대구, 영천, 밀양, 강릉 등 ‘전통적인’ 무더위 지역이다.

23일 일본 동남쪽에서 발생한 제11호 태풍 ‘우쿵’은 삿포로로 향하면서 한국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5일에도 전국에 폭염경보가 이어지고, 낮 최고기온이 33~38도에 이르는 무더위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