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났어요. 방금 서울 최고기온 넘었네, 넘었어.”
기상관측 111년 만에 서울과 강원 홍천 등이 최고기온 역대 기록을 세운 1일 오후. 윤기한 기상청 사무관(49)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스마트폰 너머로 기록 경신을 알리는 다급한 목소리와 복도를 오가는 발소리가 전해졌다.
폭염이 계속되면서 오히려 ‘살얼음판’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 기상청에서 하루종일 바짝 긴장해 모니터를 바라보는 예보관들과 대변인실 직원들이다. 윤 사무관은 집에서 오전 6시에 나와 기상청에는 7시 전에 도착한다. 이날 첫 날씨 문의는 5시40분. 모 방송사 기상캐스터의 ‘카톡’이었다. 6시20분 답장을 했다. 그렇게 카카오톡 메시지, 문자, 전화가 말그대로 종일 이어진다. 하루에 받는 전화가 적을 때는 70~80통, 많을 때는 100통이다. 이날은 오후 3시에 벌써 배터리가 떨어졌다. 스마트폰은 잔뜩 달아올라 손난로가 따로 없을 정도다.
본청에서는 예보관 6명이 4교대로 12시간씩 근무를 한다. 평소에는 한 시간 정도 예보분석 토의를 했는데 최근 30분씩 늘어나는 건 예삿일이다. 중압감도 심하다. ‘미답’의 영역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일 39도가 넘는다고 예보했는데 넘지 않는다면?’ 기상청 직원들이 가장 긴장하는 순간은 재해 상황 혹은 ‘극값을 넘을 때’라고 한다. 폭염을 두고 대통령까지 “재난 수준”이라고 언급한데다 매일 최고기록을 경신하다보니 이중의 압박에 시달린다.
1995년 기상청 근무를 시작한 윤 사무관은 예보관으로 8년을 일했다. 그 사이 변한 한반도의 날씨를 최근 더욱 절감한다. “전에는 여름이면 여름인가 보다, 겨울이면 겨울인가 보다 했는데 요즘은 겁이 날 정도”로 날씨가 극단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관측 데이터로 봐도 집중호우 등 강도가 세지는 게 확연하다고 했다. 올 여름 오락가락한 태풍에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기상청 직원들은 주말도 없는 비상체제다. 76년만에 40도를 넘어선 순간 직원들은 내부 관측시스템에 뜬 ‘홍천 40.3도’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으며 “역사의 순간”에 있다는 말을 나눴다고 한다.
다행히 올 여름 폭염 예보는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늘 그렇듯 기상청을 ‘오보청’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젠 “그러려니 한다”고 했다. 날씨 탓에 생계의 위협을 받는 시민들의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요즘 주변 사람들의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폭염이 언제 끝나냐”는 것이다. 윤 사무관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아직 터널의 끝을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더운 것일까. 그는 “매번, 흔히, 모두가 말하면서도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기상청에서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건강을 과신하지 마세요. 목마르기 전에 물을 마시고, 피곤하기 전에 쉬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닥치기 전에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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