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이어져 비무장지대(DMZ)를 직접 방문하게 된다면, 어느 곳이 좋을까. 65년간 군사적 목적 외에 사람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었던 DMZ 일대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생태의 보고가 됐다. 여기에 전쟁의 상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식민지 근대유산도 포개져있다. 자연유산과 역사유산이 결합된 현장인 셈이다.
길이 248㎞의 DMZ은 한반도의 허리다. 파주 임진강변부터 고성 동해안까지 이어지는 공간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했을까. 녹색연합과 국립수목원은 한국전쟁 정전 65주년을 맞아 7월27일 비무장지대 일원의 자연환경과 현안을 정리한 <평화와 생명의 DMZ>을 발간했다. 10년 전 녹색연합이 국내 최초로 발표했던 <비무장지대환경실태보고서> 이후 변화상을 담았다.
연천 비무장지대 _ 녹색연합 제공
녹색연합에서는 DMZ에서 10곳을 추천한다. ①사천강 습지(경기도 파주의 임진강 하류) / ②사미천 습지(경기도 연천) / ③임진강 습지(경기도 연천) / ④평강고원(강원도 철원의 철원평야) / ⑤한탄강 습지(강원도 철원) / ⑥한북정맥-삼천봉-적근산(강원도 철원, 화천) / ⑦백암산-금성천-북한강-백석산(강원도 화천, 양구) / ⑧양구 해안분지(강원도 양구) / ⑨백두대간-고성재-삼재령(강원도 인제, 고성) / ⑩건봉산-남강(강원도 고성). 녹색연합 책자 내용을 요약한 글과 사진을 정리해 옮겼다.
평화와 생명의 DMZ
비무장지대는 연천,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까지 한반도 허리에 걸쳐있다. 서부와 중부에는 구릉지대와 평원, 습지가 번갈아 나타나며 철원 한북정맥에 다다르면 그때부터 DMZ는 울창한 산림을 자랑하며 고성까지 이어진다. 동고서저의 전형적인 한반도 지형이다. 인위적인 개입 없이 자유곡류하며 흐르는 DMZ의 하천은 곳곳에 습지와 둠벙이 형성된 생물다양성의 보고다. 산림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천연림은 그곳에 깃들어 사는 생명에게 안정적인 서식처를 제공한다. 우리나라 전체 생물종 4만9027종 중 12%인 5929종이 DMZ에 살고 있다. 멸종위기종은 101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멸종위기종의 37.8%이다.
사천강 습지 | 녹색연합 제공
사미천 습지 | 녹색연합 제공
임진강 습지 | 녹색연합 제공
위협받는 비무장지대
DMZ 일원 산사태는 표고가 높은 동부지역에서 주로 발생한다. 잘 보전된 울창한 산림을 훼손하는 주요 요인이다. 산사태는 경사가 급한 지역을 절개해 만든 군 전술 도로를 따라 발생한다. 사면 안정화, 배수 문제 등 경사가 급한 사면을 절개할 때 이뤄져야 할 조치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사태는 DMZ 자연생태계를 훼손하며, 군 장병의 목숨을 위협한다. 군과 지자체, 산림청이 함께 협력해 민통선 지역 산림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DMZ 산사태는 한 번 발생하면 복구·복원이 쉽지 않고 그 기간도 상당히 길다. 올바른 시스템 안에서 사전에 산사태를 예방해야 한다.
전술도로 옆 산사태 현장 | 녹색연합 제공
DMZ 일원에서는 매년 산불이 발생한다. 산림청 산불통계연보에 따르면 DMZ 산불 빈도가 증가하고, 대형화하는 추세다. 이 지역은 10만 명이 넘는 군인들이 생활하는 곳이며, 군사시설이 밀집된 국가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하지만 미확인 지뢰지대가 산재해 있어 안전성 확보가 어렵고 진화 인력이 접근하기 어려워 산불 예방과 진화가 까다롭다. 적절한 대응을 위해서는 군의 체계적인 예방대책과 초동 진화 역량이 필요하다. 보철 산불 집중 시기에는 군, 지자체, 산림청의 공동대응 협력체계가 필요하다.
철원평야와 화강 | 녹색연합 제공
한탄강 습지 | 녹색연합 제공
한북정맥 적근산 | 녹색연합 제공
북한강과 주변 습지 | 녹색연합 제공
개발 논의는 쏟아지는데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온갖 남북경협 사업 구상이 나온다. 무대는 비무장지대 일원이다. 개발 사업은 비무장지대 자연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비무장지대를 보호하거나 남북경협 환경 영향에 대해 남과 북이 합의한 제도는 부재한 실정이다.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돠 과거 환경파괴 논란이 있었다. 지속가능한 비무장지대 더 나아가 한반도를 위해선 남북 공동의 환경기준이 필요하다.
지뢰는 비무장지대의 실질적 위험이다. 2018년 5월 기준 민간인 지뢰피해자는 총 608명이며, 미집계 건수를 합치면 피해자 수는 1000여명으로 추정된다. 개발압력으로 민통선이 북상하면서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곳에 제거되지 않은 지뢰가 산재하고 있다. 정부는 지뢰 지대 접근을 막는 안전펜스 작업, 야간 보행자를 위한 발광 표지판부터 설치해야 한다. 더불어 민통선 이남 지역 지뢰 지대를 전수조사하고, 단계적인 제거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풀이 많이 자라 제대로 식별되지 않는 지뢰 표지 | 녹색연합
남과 북의 교류를 위해선 비무장지대로 단절된 간극을 이어야 한다. DMZ를 관통하는 철도와 도로는 피할 수 없다. 남북은 경의선과 동해선 설비를 현대화하기로 했고, 경원선 복원 사업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DMZ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남과 북의 연결은 DMZ에 사는 생명들에게는 단절이다. 환경 영향에 대한 충분한 연구조사를 거쳐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북으로 향하는 경의선 철로 | 녹색연합 제공
환경부는 ‘한반도의 생태축으로 백두대간을 종축, DMZ을 횡축으로 설정’했다. 백두대간은 보호법이 있지만, DMZ는 아직 보호 장치가 없다. DMZ의 공간 범위는 계속 줄어들었다. 냉전을 거치며 전체면적의 40%가 축소됐다. DMZ을 “248㎞ 길이에 남북으로 폭 4㎞의 공간”으로 정의하지만, 실제 공간 면적은 훨씬 줄었다. 면적이 줄었다는 것은 DMZ라는 생태축이 좁아졌다는 의미다. 한반도 생태축으로 DMZ는 백두대간보다 폭이 훨씬 좁다.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더 이상의 축소와 훼손은 막아야 한다.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스스로를 치유한 DMZ는 남과 북만의 유산이 아니다. DMZ는 세계복합유산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국제적 생태보고로서 세계자연유산과 20세기 전쟁과 냉전의 현장이라는 세계문화유산이 결합된 유일한 현장이다. 남과 북 그리고 주변 국가들이 함께 지혜와 협력을 발휘해야 한다. 전쟁과 분단의 슬픔을 딛고 한민족이 인류에게 주는 미래의 세계유산이 DMZ다.
양구 해안분지 | 녹색연합 제공
한반도의 생태축인 백두대간과 DMZ가 교차하는 지점 | 녹색연합 제공
건봉산 부근 비무장지대 | 녹색연합 제공
<글·사진 녹색연합 제공>
▶[DMZ를 그린존으로] 북한 숲 살리려면 49억 그루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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