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자료사진
“학교가 뽑은 1순위 후보를 교장으로 보내주세요.”
지난 20일과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는 두 차례 집회가 열렸다. 도봉구에 있는 도봉초등학교와 구로구에 있는 오류중학교 학부모와 교사들이 주도했다. 이들은 집회를 ‘학교가 선택한 교장, 왜 안 되는지 물어보는 대회’라고 불렀다. 38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거리로 나선 이유는 뭘까.
앞서 도봉초와 오류중은 오는 9월 1일자로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통해 교장을 선발하기로 했다. 학교 구성원들은 관련 규정에 따라 심사과정을 거친 뒤 후보자를 결정했다. 하지만 1차 심사과정에서 1순위로 올린 후보가 2차 심사과정에서 탈락했다. 두 학교 학부모와 교사들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교육청 결정에 반발했다. 도봉초, 오류중의 교장공모 후보자를 각각 심사한 북부교육지원청과 남부교육지원청은 “규정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심사를 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급기야 23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학부모와 교사들이 참여한 1차 심사 1순위 후보가 교육지원청 심사에서 탈락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며 제도개선을 촉구했다.
내부형 교장공모제가 뭐길래
2007년 도입된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경력 15년 이상의 교사라면 교장자격증을 소지하지 않았더라도 교장공모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혁신학교와 같은 자율학교와 자율형 공립고가 대상이다. 오랫동안 교단에서 학생을 가르친 평교사가 ‘승진 코스’를 밟지 않고도 교장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교장공모 심사는 2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는 학부모, 교원 등 학교 구성원으로 구성된 학교교장공모심사위원회가 맡는다. 이들은 후보자들 가운데 3배수(1~3순위)에 해당하는 후보를 결정해 교육지원청에 올린다.
2단계 심사는 교육지원청장인 교육장(고등학교는 교육감)이 구성하는 교육청교장공모심사위원회가 담당한다. 교육청심사위는 총 7명으로 교육장이 퇴직교장, 교육전문가, 대학교수, 학부모 등으로 구성한다. 학교가 결정한 3배수 후보들을 심사해 그 중 2배수(1~2순위) 후보를 결정한다. 1단계 심사결과는 2단계 심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교육감은 2배수에 든 후보들의 1·2단계 심사점수를 고려해 최종 결정을 내린다.
도봉초·오류중의 1차 심사에서 1순위를 차지한 후보들은 교장 자격증이 없는 평교사들이다. 이들을 누르고 2차 심사에서 1순위를 차지한 후보들은 현직 교감으로 알려졌다. 내부형 교장공모는 다른 방식보다 학교구성원의 뜻을 높게 반영하기 때문에 1차 심사 결과가 뒤집히자 반발이 컸다.
이번 논란을 두고 교육계는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를 요구해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는 “교육 기득권세력이 평교사 출신의 교장 진출을 막기 위해 갑질을 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무자격 내부형교장공모제 폐기’를 주장해온 서울교원단체총연합회는 “2차 심사 시 학교운영계획서와 심층면접 모두 블라인드방식으로 이뤄져 공정성에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없던 일’이 된 교장공모
시교육청은 지난 17일 예정됐던 공모교장 임용제청 추천자 최종 선정을 미루고 두 교육지원청의 2차 심사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감사에 착수했다. 결국 시교육청은 지난 27일 교장공모 과정에서 논란이 발생한 도봉초와 오류중에 교장을 발령하지 않기로 했다. 시교육청은 “교장공모제 취지와 도봉초·오류중 구성원 의견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교장 임용제청 추천대상이 없다고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이들 학교가 계속 교장 공모를 원하면 다음 학기에 다시 공모를 시행한다. 그동안 학교는 교감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공모를 원하지 않으면 교육청이 바로 새 교장을 발령한다. 하지만 시교육청은 1차 심사에서 1순위로 결정된 후보가 2차 심사에서 탈락한 이유도, 감사 결과도 제대로 밝히지 않아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시교육청은 원론적인 제도개선안을 내놓는 데 그쳤다. 시교육청은 학교의 자율성을 지원하고 심사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교장공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교육부에 교장공모 제도개선을 요청하고 나아가 교육감이 교장공모 운영방식을 정할 수 있도록 권한 배분도 요구하기로 했다.
도봉초·오류중 공동대책위는 “학교 자율운영의 참뜻을 살려 학교혁신을 이루고자 이번 내부형 교장 공모에 응했다. 미흡한 제도로 인해 이 의지가 훼손된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또한 “같은 (공모)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하는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행복과 성장을 위해 지난한 과정을 기꺼이 감내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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