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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인형만도 못한 놈들” 일상적 폭언… 포스코 노조 결성 이유

4일 오전 서울 중구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노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포스코의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사진·금속노조 제공

4일 오전 서울 중구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노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포스코의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사진·금속노조 제공

“어느날 한 부장님이 운전실에 곰인형을 가지고 들어와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너희는 이 곰만도 못한 놈들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알파곰 사건’입니다. 위에서 막말해도 참는 군사적 문화, 수직적 문화… 저희가 노조를 만든 이유입니다.”

지난달 17일,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던 포스코에 창사 50년 만에 처음으로 노조가 생겼다. 깃발은 올렸지만 노조 출범 이후로 순탄치 않은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 동안 회사가 노조 와해를 시도하는 문건을 만든 정황이 노조 조합원들에 의해 포착됐다. 민주노조에 대항하는 또 다른 노조 ‘포스코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해 노조 조합원 모집을 방해하는 등 노조 활동에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동조합 포스코지회는 4일 오전 서울 중구의 금속노조 건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합원들이 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던 포스코 사내의 폭압적인 근무환경과 노조 결성 이후 사측의 방해공작에 대해 알렸다.

이철신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사무장은 ‘알파곰 사건’을 소개하면서 근무현장에 ‘군대식 문화’가 만연해있다고 했다. 이 사무장은 “직원들끼리 볼 수 있는 익명 게시판에 회사를 비방하거나 경영진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면 익명 게시판임에도 노무 부서에서 글을 올린 사람을 파악해서 글 올린 사람의 상사에게 전화를 하고 징계까지 내린 사례들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입사 28년차인 정영균 포스코지회 정책부장은 “직원들을 인격체가 아니라 부품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것에 직원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다가 노동조합이 생긴 후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했다.

지난 1일 금속노조와 포스코지회 조합원 10여명은 집담회를 열고 업무 중 발생한 사고를 노동자 1인에게 전가하는 ‘반성회’ 문화에 대해 성토하는 자리를 가졌다. 공장에서 생산 중에 설비문제가 생겨서 생산이 끊어지면 공장관리자가 해당부서 주임과 그 밑의 직원들을 소집해서 책임자 1인을 색출한다. 설비상 문제가 있더라도 ‘개인이 주1회 점검을 안했다’ ‘작업 기준표를 안 지켰다’는 식의 보고서를 쓰게 하고 1명에게 책임을 돌린다. 정영균 포스코지회 정책부장은 “회사의 잘못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죄책감을 주입하는 강요된 반성회다”라고 말했다. 밤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근무한 야간 근무자들이 퇴근을 하지 못하고 낮 2시까지 모여서 책임자를 찾는 ‘반성회’를 한 사례들도 소개됐다.

월 최소 1건씩 동료 간에 서로의 잘못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는 메일을 보내도록 의무한 ‘자율상호주의’ 제도 등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상섭 금속노조 포항지회 사무국장은 “집담회에서는 회사의 군사적인 노동체계와 상호 감시체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며 “지금은 2018년이지만 포스코의 시계는 1970년대, 1980년대에 멈춰있다”고 말했다.

노조 결성 후 사측에서 지속적으로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포스코 노조는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인사·노무관리 업무를 맡는 노무협력실 직원들 중 일부가 지난 7월부터 사내 익명게시판인 ‘대나무숲’에 노조에 부정적인 댓글을 달아왔다며 자료를 공개했다. 포스코 노조는 “익명 게시판이지만 우연히 작성자의 직번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댓글 작성자의 직급과 근무부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확인결과 대부분의 비방댓글을 단 사람이 노무협력실 직원들이었다”고 말했다.

포스코 사내 익명게시판에 노무협력실 직원이 작성한 글.사진·금속노조 제공

포스코 사내 익명게시판에 노무협력실 직원이 작성한 글.사진·금속노조 제공

포스코 사내 익명게시판에 인사노무그룹 직원이 작성한 글.사진·금속노조 제공

포스코 사내 익명게시판에 인사노무그룹 직원이 작성한 글.사진·금속노조 제공

포스코 노조에서 공개한 화면을 보면 아이디 ‘삼다수’라는 작성자는 포스코지회의 노조 홍보 게시물에 “민노총(민주노총)에서 지령 받아서 할 텐데, 그쪽 대가리들이 돌대가리인지 아님 원래 이렇게 무식하게 활동을 하는 건지, 하긴 조금 있으면 빨간 띠에 죽창도 왔다갔다 하겠죠”라고 댓글을 달았다. 노조에서 확인 결과 글을 작성한 사람은 노무협력실에 근무하는 차장이었다.

아이디 ‘Duty프리’라는 사람은 “요즘 현장 다니다보면 누가 금속노조원인지 금방 티가 납니다”라며 “금속노조 가입한 게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제발 구태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글 작성자는 인사노무그룹 인사섹션에서 근무하는 과장급 직원이었다.

포스코 직원들은 사측이 노조 가입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비대위’ 가입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 출범 후에 기존에 조합원 9명으로 구성됐던 유령노조는 ‘포스코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고 한국노총에 가입했다. 한 조합원은 “공장장이 현장 주임 등 현장 책임자들에게 따로 비대위 가입 독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기창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90년대 초반 노조 와해 과정에서 있었던 포스코의 군홧발로 (노동자를) 짓밟는 포악적인 방식의 부당노동행위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포스코 사측은 “대나무숲은 사내의 인트라넷에 비실명으로 의견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소통공간이다”라며 “이 사이트는 익명성 보장을 철칙으로 하기에 누가 어떤 글을 작성했는지 확인되지도 않고 확인해서도 안되며 확인하지도 않고 있기 때문에 (사측이)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았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