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학생이 찍은 핸드폰 영상은 사용 금지.”
“세월호 1년, 이념은 다를 수 있으나...슬픈 음악으로 시청자를 억지로 유도하면 안 됨.”
“부장 생각: 장례식장 글귀들 중에 색채가 뚜렷한 영상은 사용하면 안됩니다.”
MBC 영상편집부에 수시로 내려온 ‘편집지침’의 내용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이 찍은 영상을 사용하지 말라거나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는 장면을 담은 외부 영상을 쓰지 말라고 하는 등 구체적 지시가 담겨 있는 e메일을 비롯한 문건도 확인됐다. 파업 중인 언론노조 MBC본부는 31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내용이 담긴 영상편집부 권모 부장의 e메일을 공개했다.
노조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권 부장은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2일 부서원들에게 “연일 고생이 많습니다. 규제가 새로 생겨서 공지합니다. 실종자 학생이 찍은 ‘핸드폰 영상’은 사용 금지. 보도국장”이라는 e메일을 보냈다. 당시 보도국장은 김장겸 현 MBC 사장이었다. 실제 MBC는 해경의 구조 소홀을 드러내는 단원고 학생의 휴대폰 촬영 영상을 확보해놓고도 이 지침이 내려간 뒤로는 뉴스에 내보내지 않았고, 배 안의 모습이 필요할 때에도 특정 영상만 반복해 사용했다고 노조는 설명했다.
권 부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보편적인 사실만 나열하고 이념이 들어간 그림은 자제하라. 장례식장 글귀 중 ‘세상을 바꾸겠습니다’는 사용하면 안 된다”, “추모집회와 정치적 집회를 잘 판단해 팻말 리본에 달린 글을 잘 써라. 옛날엔 안 그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회사는 공영방송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지침을 담은 e메일도 보냈다.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집회의 피켓 글자를 모자이크 처리해 집어넣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인 2015년 4월16일에도 e메일로 “이념은 모두 다를 수 있으나 보도는 항상 중립적인 자세로 임할 것. 화면조작이나 음악을 사용할 시 부장과 상의하라”며 “사고 여객선에 얼굴을 판다(합성한다)거나, 슬픈 음악으로 시청자를 억지로 유도하면 안 된다”고 지시했다.
당시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해서는 “성완종은 곧 구속기소될 혐의자였고 의인이 아니었다”, “그의 주장을 사실처럼 꾸며서 영상을 만들면 뉴스가 아니라 픽션이 된다”며 ‘부장 생각’이라는 표시를 붙여 사실상의 지침을 내려보냈다.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대회 때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을 담은 노컷뉴스와 민중의소리 영상을 MBC 취재진들이 확보했지만 이 영상은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영상편집부 노조원들은 권 부장이 “민중 총궐기대회 영상 우리회사 원본만 사용할 것. 노컷뉴스나 민중의소리 등 외부자료 사용금지”라고 지시해 사실상 백 농민이 쓰러지는 장면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고 증언했다.
권 부장은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서울에 출마한 여성 후보들을 소개하는 리포트에서 새누리당 후보의 경우 뒷모습이 연속 3커트 들어갔다며 “해당 편집자는 오늘부터 영상편집 업무를 무기한 배제함”이라는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2013년 부원들에게 언론노조에서 탈퇴하고 새로 만들어진 제3노조에 가입하라고 권유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노조는 “권 부장 뒤에는 보도국장 시절 영상편집부를 국장 직속 부서로 만들어 전횡을 방조하고 조장한 김장겸 사장이 있었다”며 “세월호 참사 관련 지침에서 지시자가 ‘보도국장’이라고 명시돼 있는 것은 몸통이 김 사장이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노조는 김 사장과 권 부장 등 관련자들을 업무방해,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소할 예정이다. 권 부장의 해명을 듣기 위해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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