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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주 OUT'...방문진 '극우시대'의 종말, MBC 정상화 신호탄

2일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회의실에서 열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고영주 이사장 해임건에 대한 회의가 이인철, 권혁철 이사가 퇴장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2일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회의실에서 열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고영주 이사장 해임건에 대한 회의가 이인철, 권혁철 이사가 퇴장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를 ‘극우의 놀이터’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아온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68)이 결국 불신임됐다. 그동안 MBC를 관리감독하는 기능을 하기는커녕 불법행위들을 방조하고 오히려 내부 갈등만 키운 방문진이 앞으로 MBC 파업 사태를 수습하고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지 주목된다. 

방문진은 2일 오후 열린 정기이사회에서 고 이사장을 불신임하고 방통위에 해임을 건의하는 안건을 각각 다수결로 의결했다. 방문진은 이날 중 방통위에 고 전 이사장 해임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한다. 고 전 이사장은 방통위가 해임을 결정하지 않는다면 이사 임기를 마치는 내년 8월까지 비상임이사로 이사직을 유지하게 된다. 

불신임 결의안과 해임건의안에는 현여권 측 이사 5명이 모두 이름을 올렸다. 고 전 이사장은 이날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구여권 측 이사 3명 가운데 2명은 표결에 반발해 퇴장했고, 표결에 참여한 김광동 이사도 “개인적 사상은 이사장직 수행과 관련이 없고, 부당노동행위나 불법행위 방조 등 나머지 사유들도 근거가 없어 불신임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반발하다 해임건의안 표결 전 퇴장했다. 새 이사장에는 이완기 이사가 선출됐다. 고 전 이사장 불신임안은 지난해 10월에도 이사회에 제출됐지만 당시 다수를 차지했던 구 여권 측 이사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방조자’ 아닌 ‘주범’

MBC 관리감독보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공산주의자”라는 발언으로 더 유명해진 고 전 이사장은 공영방송이 왜곡되고 부당노동행위가 판치는 것을 지켜본 ‘방조자’에 그친 것이 아니라, MBC가 끝없이 추락하게 만든 ‘주범’ 중 한 명이었다. MBC 안에서 온갖 문제가 불거질 때 감시하고 막기보다는 논의를 파행으로 끌고가거나 제재 조치를 기각시켰다. 그가 해임됨으로써 진탕이 돼버린 방문진이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고 전 이사장은 2012년 8월 구성된 9기 이사회에서 감사직을 맡으며 방문진에 발을 들였다. 2015년 8월 10기 이사로 임명된 뒤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그가 이사장이 된 뒤 방문진은 공공기관으로서의 책무를 포기하고 극우의 선전장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이 2%대로 떨어진 지난해 탄핵 국면에서 “태극기 집회에서는 MBC가 가장 사랑받는다”고 주장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라고 거듭 주장했다. 온라인 극우매체에 광고비를 몰아준 일도 여러 차례 문제가 됐다.

기자·PD를 불법으로 해고했음을 고백한 백종문 녹취록, 기자들을 불법 사찰한 ‘트로이컷 사건’ 등 경영진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마다 고 전 이사장은 책임을 묻는 대신 “방문진에서 다룰 일이 아니다”라며 덮어주기 급급했다. 지난 2월에는 사장 후보들을 면접하면서 노조원들을 배제할 방안을 물어,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소당했다. MBC 경영진들의 위법행위에 직접 가담했던 셈이다. 이번 불신임 사유에는 MBC 옛 여의도 사옥 매각과 관련된 의혹을 비롯한 개인비리 논란도 포함됐다.

MBC 정상화 신호탄

방문진이 관리감독기관이 아닌 ‘언론탄압 수단’이 된 것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였다. 2009년 8월 구성된 방문진 8기 이사회는 2010년 엄기영 당시 MBC 사장을 압박해 물러나게 하고, 구성원들의 반대 속에 김재철 사장을 임명했다. 김우룡 당시 이사장은 2010년 언론 인터뷰에서 “MBC 내의 좌빨 80%는 척결했다” “큰집(청와대)이 불러다가 쪼인트 까고 매도 맞고 해서 한 것”이라며 방문진과 청와대의 공영방송 인사 개입을 자랑처럼 털어놨다. 김 전 이사장은 당시 국가정보원의 MBC 장악 문건을 전달받은 당사자로 알려져 최근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방문진은 그후로도 안광한, 김장겸 사장 등 구성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인사들을 선임했고, MBC에서는 ‘사장 퇴진 투쟁’이 일상이 됐다. 제작거부와 파업이 반복되며 채널 경쟁력은 떨어졌다. 경영진은 파업에 대한 보복 인사와 징계를 남발하고, 방문진은 이를 방기하고, 갈등이 증폭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8~10기에 걸쳐 3연임한 김광동 이사, 9기 이사였다가 KBS 이사회로 자리를 옮긴 차기환 이사 등 편향적인 인사들이 방문진을 장악했다는 지적도 많았다.

당장 방문진 앞에 닥친 과제는 장기화된 MBC 파업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다. 고 전 이사장이 해임됨으로써, 정권이 MBC를 장악하고 통제하는 창구로 이용해온 방문진이 정상화되는 길을 밟을 수 있게 됐다. 방문진은 이르면 8일쯤 임시이사회를 열고 김 사장 해임안을 상정할 계획이다. 해임안이 방문진 의결을 거쳐 주주총회에서 확정되면 김 사장은 즉각 해임된다. 

MBC 관리감독기능을 정상궤도로 되돌리는 일도 방문진의 몫이다. 현 여권 측 이사들은 이날 고 전 이사장 불신임안을 의결한 직후 MBC의 보도·시사부문에 대한 비판이 담겼다는 이유로 구 여권 추천 이사들이 일방적으로 폐기했던 2016년 MBC 경영평가보고서를 채택하는 안도 의결했다.

두달 째 파업 중인 노조는 “새로 재편되는 방문진은 정권의 방송 장악에 협력하는 구태를 반복해선 안 된다”며 “하루빨리 김장겸 사장을 해임한 뒤 제대로 된 신임 사장을 선임하고, MBC 관리감독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방문진 개편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든 가운데 KBS 이사회 구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방통위는 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김경민 전 KBS 이사의 사퇴로 공석이 된 자리에 조용환 변호사(58)를 추천하기로 의결했다. 조 변호사가 정식 임명되면 KBS 이사회는 구여권 6명, 현여권 5명으로 재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