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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PD수첩 ‘9년 잔혹사’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2017-07-31 10:33:54

“저는 그 보도가 정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후보자는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의 ‘PD수첩 광우병 보도’ 관련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날 MBC <뉴스데스크>에는 ‘“광우병 보도는 정당”...이효성 발언 논란’이라는 리포트가 들어가 있었다. 

뉴스는 2008년 방영된 <PD수첩>이 중요한 사실관계를 왜곡했다고 비난했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 시위로 이명박 정부가 레임덕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자사 프로그램을 <뉴스데스크>가 앞장서 비난한 셈이다. 오히려 이날 JTBC <뉴스룸>이 이 소식을 다루면서 “대법원은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인정했지만 허위 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PD수첩> 취재팀에 무죄를 선고했다”고 보도했다. 왜 MBC는 자사의 과거 방송을 비판하는 데 앞장섰을까. 



■<PD수첩>은 왜 회사와 정권의 미움을 받았나 

이틀 뒤인 21일, PD수첩 제작진은 “사측의 제작 자율성 침해가 인내의 한계를 넘었다”며 제작 거부를 선언했다. ‘한상균을 향한 두 개의 시선’이라는 기획안의 제작이 불허된 일이 단초가 됐다. 제작진은 민중총궐기를 이끌었다가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백남기 농민, 급식 노동자 비하 발언, 집배원들의 자살 등을 조명해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고찰해보자는 취지의 기획안을 냈지만 담당 국장과 본부장이 제작을 불허했다고 밝혔다. 

MBC는 시사제작국 명의의 성명으로 맞받았다. ‘PD수첩이 민주노총의 청부 제작소인가’라는 제목의 이 성명에서 시사제작국은 <PD수첩> 제작진이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 조합원들이기 때문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해 다룰 경우 공정성과 객관성의 보장을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시사제작국은 앞서 <PD수첩>이 방송한 ‘4대강 사업 22조원의 행방’ ‘문자폭탄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 ‘군함도 그리고 아베의 역사전쟁’ ‘뒤바뀐 사인, 억울한 죽음’ 등의 아이템에서도 정확성과 공정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했다. “언론노조가 <PD수첩>을 가지고 문제를 일으켜 MBC 내부 문제에 외부세력이 개입할 빌미를 만들려는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제작진, 제작 거부 돌입

‘이효성 발언’ 보도와 시사제작국 성명이 나온 뒤 <PD수첩> 담당 팀장이던 장형원 시사제작3부장은 24일 “팀장이기 전에 한 명의 PD이고 인간인 제 양심을 지키고 싶다”며 보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같은 회사 프로그램을 가리켜 국민을 속이는 방송이라 비판하고 자해하는 보도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언론이며, 해당 부서장이 소속 프로그램의 존재를 부정하는 성명서를 내는 것이 정상적인 조직이냐”고 회사 수뇌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MBC는 당일 인사발령을 내 빈자리를 채웠다.

2008년 7월 서울 여의도 MBC사옥 앞에서 열린 <PD수첩> 검찰수사 항의 촛불집회. 경향신문 자료사진



<PD수첩>은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황우석 논문 조작 사태,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스폰서 검사 등 대형 이슈들의 상당수를 세상에 처음 알렸거나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황우석 사건 등을 다루고 정권을 겨눴던 <PD수첩>은 2008년 광우병 보도 이후 탄압의 타깃이 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았고, 농림수산식품부와는 정정보도 소송전을 벌여야 했다. 

검찰은 PD와 작가들을 긴급체포하고 MBC 본사와 제작진 집까지 압수수색한 끝에 제작진 5명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수사를 맡은 부장검사가 무혐의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강경대응을 주문하는 지휘부와 대립해 검찰을 떠나기도 했다. 제작진은 이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지만 MBC는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들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2009년 검찰 수사관들이 MBC <PD수첩> 이춘근 PD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광우병 보도 이후 <PD수첩>은 여러 차례 외압 논란에 시달렸다. 2010년 김재철 당시 사장의 결정으로 불방됐다가 우여곡절 끝에 방송된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편이 대표적이다. 보도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장책임제’를 규정했던 단협 조항이 무력화돼, 고위 경영진이 보도에 간섭할 여지가 많아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2012년 파업 직후에는 <PD수첩> 작가 6명이 해고됐다. PD 절반 이상이 징계를 받거나 타 부서로 발령났다. 빈 자리는 파업 중 선발된 대체인력이 채웠다. 

광우병 보도 때 <PD수첩> CP(책임프로듀서)였던 조능희 PD는 “MBC가 그간 황우석 보도, 광우병 보도처럼 정권의 핵심을 겨누는 방송을 할 수 있는 것은 독립적인 공영방송 시스템에서 제작진의 자율성이 보장됐기 때문이었다”며 “그 위력을 보여준 광우병 보도 이후 정권이 방송을 꼭두각시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거부 열흘째.. 다시 맨 앞에 선 <PD수첩> 

제작거부는 노조 차원의 파업과 달리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렵다. 총파업보다 제작거부가 오히려 더 어려운 결정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PD수첩> 제작진은 “두렵지 않다면 거짓이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MBC 내부에서도 “터질 문제가 터졌다”라는 분위기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지난 28일 <PD수첩> 제작진들이 MBC와 김장겸 사장 등 간부들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제공



지난 24일 제작거부 선언 기자회견에서 <PD수첩> 제작진은 그동안 겪은 간부들의 간섭들을 공개했다. 2013년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 때 당시 시사제작국장이 “지방에 있는 병원 하나가 문 닫는 일에 누가 관심이 있겠냐? 노인네들이 병원에서 나가는 방송 해봤자 시청률 안 나온다”고 말했고 이에 문제제기했던 PD들이 비제작부서로 발령났다는 것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는 “유가족이 우는 장면을 최대한 삭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2014년 이명박 정부 당시 한국석유공사의 캐나다 하베스트 부실인수 의혹을 파헤친 방송이 나간 뒤에는 담당 PD들이 스케이트장 등으로 발령났다. 

'세월호 유족 우는 장면 빼라, 박대통령 얼굴 조금만 써라”···MBC의 민낯

국정원의 이탈리아 해킹프로그램 구매 사건, 국정 역사교과서 논란, 백남기 농민의 물대포 사망사건, 한일 위안부 합의 등은 제작이 불허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의료 시술 관련 방송에서는 박 전 대통령 얼굴을 많이 쓰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인 지난 4월에야 방송된 ‘세월호, 101분의 기록’ 편에서는 ‘국가’와 ‘청와대’라는 말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제작진은 밝혔다. 

MBC는 제작거부 사태 직후 문제의 한상균 관련 아이템을 발제했던 이영백 PD를 2개월 대기발령 조치하고 “제작거부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3건 냈다. 하지만 다른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시사제작국 PD와 기자 30여명이 제작거부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라, <PD수첩> 제작자율성 침해를 둘러싸고 발발한 이번 사태는 시사제작국 전체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시사매거진 2580>, <경제매거진>, <생방송 오늘 아침> 등 MBC의 주요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모두 시사제작국 소속이다. 지난 9년간 탄압을 온몸으로 받아왔던 <PD수첩>이 다시 제작 자율성 투쟁의 선봉에 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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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 2580>에도 검열은 일상” MBC 제작거부 확대되나

지난 28일 <PD수첩> 제작진들은 MBC와 김장겸 사장,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 조창호 시사제작국장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PD수첩> 한 관계자는 “징계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두렵지만 회사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