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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MBC 사태’ 키운 배후는 옛 여권 방문진 이사들

MBC 보도국 기자 81명이 지난 11일 서울 상암동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제작 중단에 들어간다는 선언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MBC 보도국 기자 81명이 지난 11일 서울 상암동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제작 중단에 들어간다는 선언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여러 매체가 왜곡·조작 방송을 하니까 애국시민들이 MBC만 보고 있다. 태극기집회에서 MBC가 절대적 환영을 받는다.”

올 1월 MBC 상반기 업무보고 자리에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한 말이다. 지난 11일부터 제작 중단에 들어간 MBC 기자들은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보도를 대표적인 왜곡보도 사례로 꼽았다. 촛불집회 초기에는 아이템 꼭지 수를 줄였고, 이후엔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보도를 1 대 1 비율로 맞췄으며, 태극기집회에 젊은층이 참가했다거나 유모차 부대가 나왔다는 인터뷰를 하도록 지시했다고 기자들은 밝혔다. 기자들이 대표적인 보도 불공정 사례라고 주장한 일들을 MBC를 관리·감독하는 방문진 이사장은 독려한 것이다.

제작 중단에 들어간 기자들이 공개한 보도 불공정 사례에는 세월호 참사, 국정교과서, 위안부 합의 등 굵직한 이슈마다 편향된 기사 작성을 지시받았다는 내용이 빼곡하다. 이 과정에서 항의하거나 목소리를 낸 기자와 PD들은 제작부서 밖으로 밀려나거나 해고당했다. 이달 들어 기자·PD들의 제작 거부로 이어진 MBC 사태는 뉴스 프로그램 파행을 낳으며 임계치를 넘어 폭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MBC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도 문제이지만, 이미 이 사태는 한 회사 차원을 넘어 언론자유와 사회정의, 적폐청산의 문제로 자리매김했다. 그 책임은 지난 정권에서 MBC 관리·감독에 손을 놓은 방문진에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방문진은 MBC 지분 70%를 갖고 사장을 선임하며 경영을 관리·감독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옛 여권 추천 이사 6명, 야권 추천 이사 3명으로 구성된 방문진 이사회는 여권 측 이사들의 입김에 좌우되면서 제 역할을 하기는커녕 경영진 감싸기에 급급했다.

[MBC 제작거부 확산]‘MBC 사태’ 키운 배후는 경영진 감싼 옛 여권 방문진 이사들

가장 최근의 사례는 MBC 경영평가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일이다. 방문진 이사회는 매년 6월 전년도 방송·경영 등을 평가하는 경영평가보고서 채택을 의결한다. 그런데 2016년 경영평가보고서에 보도·시사 부문의 객관성과 공정성 문제, 일부 패널의 막말과 편파적 패널 선정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그러자 이사회는 보고서 채택을 3차례나 거부했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2016년 보도·시사 분야 책임자는 당시 보도본부장이던 김장겸 현 사장”이라며 “이사들이 김 사장을 비호하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영진의 위법행위가 드러나도 문제 삼지 않았다. 지난해 1월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는 증거 없이 해고한 것”이라고 말한 백종문 부사장의 녹취록이 공개됐다. 그런데도 방문진 이사들은 “개인적인 자리에서 한 이야기”라며 감쌌다.

MBC 경영진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에 불응한 것, 경영진이 보안 프로그램을 동의 없이 설치해 노조원 등의 정보를 들여다봤다가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일에 대해서도 전혀 책임을 묻지 않았다. MBC 노조는 최근 성명에서 “방문진은 MBC의 모든 파행에 철저히 눈감았을 뿐 아니라 배후에서 조장하고 묵인했다”면서 “방문진은 식물기구를 넘어 MBC 몰락의 총체적 공범”이라고 지목했다.

방문진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MBC 내부의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야권 추천 이사들이 안광한 당시 사장의 이사회 출석을 안건으로 올렸지만 여권 추천 이사들이 상정을 늦췄다”면서 “업무보고 때에도 사장은 인사말만 하고 나가게 하는 등 결사적으로 사장을 보호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은 “방통위가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를 임명하도록 돼 있는 만큼 해임할 수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혀 방통위가 갖고 있는 방문진의 사무 검사·감독 권한과 이사 임명권을 적극 행사할지 주목된다. 언론·시민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KBS·MBC정상화시민행동은 14일 방통위에 방문진 고영주 이사장과 김광동 이사, KBS 이인호 이사장과 조우석 이사를 해임해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흔들리는 MBC ‘김장겸호’...간부들 이탈 속 오정환 보도본부장 “끌려나가더라도 맞설 것”


제작 거부가 확산되고 보직 간부들의 사퇴가 이어지면서 MBC 김장겸 사장 체제가 중대 기로에 섰다. 그러나 일부 MBC 간부들은 공정보도를 요구하는 조직원들에 맞선 ‘항전’을 주장해 내홍이 커지고 있다.

14일 MBC 관계자들에 따르면 오정환 보도본부장은 전날 보도국 간부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사내 특정 단체는 외부 세력과 정치권력의 지원 속에 분규를 일으켜 회사 업무를 마비시키면 경영진이 무너진다고 조직원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지금의 경영진은 그런 압력으로 물러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본부장은 “끌려나가 짓밟히더라도 생물학적인 생명만 붙어 있으면 부정한 저들에 맞설 것”이라며 “흔들리지 말고 주어진 일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 본부장의 메시지는 간부들 사이에 이어지고 있는 이탈 움직임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도본부 부국장급인 최혁재 취재센터장은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친다. 회사를 위해 노력했지만 어렵다”며 보직 사퇴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앞서 10일에는 이동애 국제부장이 발령되자마자 제작중단에 동참, 하루만에 다시 인사가 났다. 

배현진 앵커와 다툰 뒤 뉴스 제작부서 밖으로 쫓겨났다고 폭로한 양윤경 기자 사건을 놓고도 내부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간부들이 보도본부 명의의 성명까지 내고 “양 기자의 보도국 전출은 근무 불성실과 업무 분위기 훼손 때문이었다”고 비난하자, 당시 담당 부장은 동료 기자들은 “보도국장이 양 기자의 징계 의사를 밝혀 부적격하다고 말렸다”고 밝혔다.

보도국 바깥에서도 민운기 콘텐츠제작2부장, 장형원 시사제작3부장, 김형윤 시사제작4부장이 제작중단에 들어간 동료들에 공감을 표하며 보직에서 물러났다. 제작중단은 16개 지역사 기자들로 확대됐다. 16일에는 보도국 외의 전체 기자들이 총회를 열어 업무중단 여부를 논의한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이달 말쯤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