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생태학의 석학인 ‘침팬지 할머니’ 제인 구달 박사(오른쪽)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10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에코 토크’에서 대담하고 있다.구달 박사의 품에 있는 인형은 그의 분신과 같은 ‘미스터 에이치’이다./권호욱 선임기자
“오오오오 호~오 호~오 호~오”
세계적인 영장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가 침팬지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아침인사’를 했다. “오 어~어~어~어~”는 “잘 자라”라는 인사라고 했다. 초·중·고생이 대부분인 청중 500여명은 눈빛을 반짝이며 숨을 죽였다가 이내 손뼉을 쳤다.
구달 박사(83)와 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63)의 ‘에코토크’가 아시아기자협회와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실 주최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만해대상(실천부문) 수상을 위해 방한한 구달 박사와 최 교수는 자연과 동물, 삶을 주제로 약 1시간 동안 자유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에코토크가 열린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400석)은 의자가 부족할 정도로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방학을 맞아 부모님과 함께 온 초·중학생들이 특히 많았다.
이날 두 학자는 청중 대다수인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를 나눴다. 행사가 시작되자 구달 박사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침팬지 인형 ‘미스터 에이치(H)’를 안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최 석좌교수는 어려운 질문 대신 쉽고 흥미로운 질문을 많이 던졌다. 먼저 1년 365일 가운데 300일 정도는 집 밖에 있는 구달 박사에게 “왜 이렇게 여행을 많이하느냐”고 물었다. 구달은 “제 나이가 84세가 돼 가는데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제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구달 박사가 전하고픈 메시지는 단순명료하다. “우리 각자가 매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구달은 “입는 것, 구입하는 것 등 삶의 방식을 바꾼다면 변화를 이뤄낼 수 있으며, 전세계 수백만명이 그렇게 변화를 선택한다면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했다.
구달 박사는 “저는 야생에 나가 대자연을 접하면 영적인 느낌까지 받는다”면서 “인간은 ‘대자연의 어머니’를 너무 많이 파괴했다”고 했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페트병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플라스틱으로부터 (자연파괴를 멈출 행동을) 시작할 수도 있어요. 너무 많은 동물이 플라스틱 때문에 죽고 있어요. 태평양엔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둥둥 떠나닐 정도죠”
구달 박사는 또 “어딜 가든 사람들이 원래 날씨가 이렇지 않았는데 너무 춥다, 너무 비가 많이 온다, 너무 건조하다는 얘기를 한다”면서 “우리가 행동을 취한다면 기후변화를 늦출 수 있다”고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정치인들이 기후변화를 부인만 하지 않는다면요.”
그는 강연 초반에도 “정치인들이 세계를 파괴하도록 놔 두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곤 한다”고 했던 터였다. 최 교수가 “정치인 얘기가 계속 나온다”고 하자 구달 박사는 청중 속의 정치인(국회의원)들을 보고 웃으며 “정치인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스스로 선출한 정치인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구달 박사는 “(정치인의) 부패 때문에 환경피해와 빈곤도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연’에서 시작한 대화는 구달 박사의 삶으로 나아갔다.
최 교수가 “살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묻자 구달 박사는 “첫번째로는 ‘뿌리와 새싹’을 시작한 것”이라고 답했다. ‘뿌리와 새싹’은 구달 박사가 1991년 탄자니아에서 청소년 12명과 시작한 풀뿌리 환경운동 네트워크다. 주로 어린이, 청소년이 참여해 지금은 140개국·8000여개 그룹이 활동 중이다.
약 10년 전에도 “남은 생의 목표는 (뿌리와 새싹에) 어린이와 젊은이를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했던 구달 박사는 이날도 어린이와 청소년, 젊은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큰 목소리로 ‘침팬지의 인사’를 들려 줄 때 그의 모습은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할머니를 연상케 했다.
구달 박사는 ‘살면서 두번째 잘한 일’로는 “동물을 바라보는 과학계의 시각을 바꾸는 데 보탬이 된 것”을 꼽았다. 세계적 석학의 겸손한 대답이었다. 구달 박사 전까지는 어떤 사람도 ‘침팬지가 인간처럼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 ‘동물에게도 개성이 있고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의 연구는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여기던 인간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알게 했다.
구달 박사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동물을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엄마 뱃속에서부터 사랑을 느꼈다”고 말한다고 했다. 구달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생계를 걱정해야 할 시기에 아프리카에 가는 꿈을 꿨다. 모두가 비웃었지만 구달 박사의 어머니만은 비웃지 않았다. 구달 박사는 “늘 일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구달 박사는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1975년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의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연구를 하다 동료 네 사람이 지역 반군에 납치당한 때를 꼽았다. 다행히 성금으로 동료들이 풀려났지만 재정지원은 끊겼다. 구달 박사는 독자적인 연구소를 설립해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최 교수가 “한국의 젊은이들도 어려움을 겪으며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자 구달 박사는 “서두르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대학에서 벗어나 실제 삶을 살아보고 다양한 분야, 다양한 국가에서 활동을 하다보면 생각이 열리고 꿈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구달 박사는 그러면서 자신의 침팬지 인형 ‘미스터 에이치’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했다.
‘미스터 에이치’는 군에서 시력을 잃은 한 시각장애인이 25년 전 행운의 징표로 구달 박사에게 선물한 것이다. 제인 구달은 “그는 ‘앞을 보지 못하면 마술을 할 수 없다’는 편견을 딛고 마술사가 됐고 그림도 그리고 있으며, 크로스컨트리 스키도 탄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래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절대 포기하면 안된다”고 덧붙였다.
‘에코토크’가 끝난 뒤 행사장은 구달 박사와 사진을 찍은 청소년들이 들떠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다. ‘어린이 과학동아 지구사랑 탐사대’를 통해 ‘뿌리와 새싹’ 활동을 하고 있는 김신혜양(12)은 자신의 블로그에 “인상깊었던 구달 박사님 말씀”이라며 “인간이 많은 자연을 파괴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해야할 것이다”라고 썼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노년의 구달 박사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게 만드는 힘이다. 그는 “세계 각국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열정으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있다. 그런 희열이 없다면 제가 제대로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박사님이 했기 때문에 저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뿌듯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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