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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100일]비정규직 줄이려면 갈등관리와 '연대' 있어야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왼쪽)이 7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왼쪽)이 7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지난달 20일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시대’ 선언에 대한 1차 후속조치다. 공공부문에서 물꼬를 튼 뒤 민간부문으로도 확산시키겠다는 것이 정부의 청사진이다. 상시·지속적인 업무는 정규직 채용을 일반화하겠다는 것이다. 고용불안과 저임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이중고다. 이를 해소하는 것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주도 성장을 이루겠다는 새 정부 정책과도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현대판 신분제’라 불리는 비정규직 채용이 굳어진 상황에서 단번에 문제를 풀기는 힘들다.

[문재인 정부 100일]비정규직 줄이려면 갈등관리와 '연대' 있어야

■당국은 갈등관리, 정규직은 ‘연대’를

박근혜 정부 때도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다만 기간제 등 직접고용 비정규직만을 대상으로 삼았다. 그래서 2007년 기간제법이 만들어진 뒤 우후죽순 불어난 간접고용에는 손도 못 댔다. 파견·용역 비율이 85%에 달하는 인천공항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재인 정부 100일]비정규직 줄이려면 갈등관리와 '연대' 있어야

문재인 정부는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까지 전환대상에 포함시켰다. 전국 852개 공공기관 기간제 노동자 9만여명과 간접고용 12만명이 전환 대상이다. 이전 정부보다 한 걸음 나아간 조치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기관별로 업무와 사정이 다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직무·고과·호봉체계가 상이하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전환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큰 틀만 제시할 뿐 구체적인 방식은 노사가 자율 협의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고용 형태를 ‘자회사형 정규직’으로 할 것인지, ‘원청 직접고용’으로 할 것인지 등도 현장의 판단에 맡겼다. 하지만 노조나 대표조직 없는 비정규직들이 고용기관과의 협상에서 한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핵심”이라며 “정부가 시혜를 베푸는 식이 아니라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협상 주체로 나서야 정규직화 모델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100일]비정규직 줄이려면 갈등관리와 '연대' 있어야

노사의 원만한 협상과 더불어 ‘갈등 관리’도 중요하다. 정규직을 늘리는 문제를 놓고 노사는 물론이고 기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혹은 직무가 다른 비정규직들 사이에 이해관계를 둘러싼 다툼이 생길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문재인표 정규직화’의 시험 모델이 될 인천공항공사는 정규직 전환 방식을 논의하기 위해 노사·전문가위원회’를 만들려 했으나, 노조 대표단 구성비를 놓고 비정규직 노조 사이에 의견차가 커 교착상태에 빠졌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협상 테이블에 사측과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같은 이해당사자들이 직접 들어가기보다는, 각각 신뢰하는 중립성 있는 전문가를 추천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기존 정규직도 우려의 시선을 거두고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시각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역차별이나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는 것도 과제다. 정부 가이드라인 발표 후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을 놓고 벌어진 갈등이 대표적이다. 교육부는 지난 6일 전환심의위원회를 열어 기간제 교사·강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할지 논의했다. 정규직 교사들과 사범대생 등은 “교원 임용제도를 흔드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기간제 교사들은 “정규직 전환에 하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양측 입장은 첨예하게 갈린다. ‘중규직’이라 불리는 무기계약직에 대해서도 노·정 시각차가 크다. 정부는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분류하며, 이들에 대한 차별을 줄이고 처우를 개선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정년만 보장될 뿐 호봉이나 승급, 복리후생에서 차별이 이어진다며 무기계약직 역시 ‘무늬만 정규직’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대화’로 민간 확산시켜야

민간부문의 비정규직 처우는 공공부문보다 열악하고 규모도 크다. 정부가 사용자인 공공부문과 달리 민간기업의 채용방식은 정부가 강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정부는 입법과 제도개편의 ‘투 트랙’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기간제·파견법에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을 명시해 상시·지속적인 업무에는 비정규직 고용을 원칙적으로 막으려 한다.

[문재인 정부 100일]비정규직 줄이려면 갈등관리와 '연대' 있어야

300인 이상 대기업에는 비정규직을 채용할 때마다 고용부담금을 부과하려 하고 있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대기업은 여력이 충분하면서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을 쓰기 때문에 대기업에 우선 (고용부담금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사회적 비용을 기업들이 부담하라는 취지다. 고용노동부 고용형태공시제에 따르면 지난 3월 300인 이상 대기업 3418곳 노동자 476만명 중 비정규직은 192만명으로 40.3%에 달한다. 300인 이상 500인 미만 기업은 비정규직 비율이 29.2%인데 1만명 이상 거대기업은 42.5%였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비정규직 비율도 높았다.

기업들은 “정규직을 강요하면 전체 고용이 줄어든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얼마나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정규직 문제에는 불평등,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 노동시장의 온갖 문제가 얽혀 있다”며 “노동계와 경영계가 공감대를 찾고 다툼이 있는 부분은 정부가 조율하면서 구조를 전체적으로 바꿔 나가야 민간까지 파급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노사 모두 사회적 대화를 강하게 불신하고 있어 쉽지는 않겠지만 사회적 대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온전한 정책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