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학부모의 동의 없는 폐교통보로 즐거워야 할 방학식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서울 은평구 은혜초등학교의 폐교를 막아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50년이 넘은 은혜초등학교는 서울의 작은 단설 사립초등학교다. 유명한 여느 사립초와 달리 아담하고 소탈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점심시간에는 6학년이 1학년 교실로 가서 어린 동생들을 위해 급식 봉사를 하며 같이 밥을 먹고 뒷정리를 도와준다. 그런 까닭에 은혜초 아이들은 서로 인사 나누며 등하교 하고 운동장에서 함께 축구를 한다”며 글을 시작했다.
겨울방학식을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은혜초는 학부모들에게 이사장 명의의 가정통신문을 보내 폐교를 통보했다. 수년간 학생 수가 줄어 재정적자에 시달린다는 게 이유였다. 은혜초는 가정통신문을 보낸 그날 서울서부교육지원청에 폐교 인가를 신청했다. 서부교육지원청은 은혜초가 학생들을 다른 학교로 나눠 보낼 계획이나 교직원 고용승계 대책 등을 갖추지 않았다며 신청을 최종 반려했다.
이 학교는 1966년 개교했다. 학생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정원 360명의 65.3%인 235명이다. 지난해 11월 2018학년도 신입생 모집까지 마쳤다. 지원자는 60명 정원의 절반인 30명 뿐이었다. 폐교를 하려면 신입생과 재학생 학부모들이 전원 동의해야 한다. 하지만 재단은 학생, 학부모들의 뜻도 묻지 않고 2월 말까지만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아이의 전학을 신청한 학부모는 현재 90여명으로 알려졌다. 폐교를 원치 않는 학부모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재단에 폐교 신청을 늦춰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청원자는 “학교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냐며 우는 아이들을 보며 학부모들은 교육이 사업으로 전락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뜻을 모으고 이사회의 일방적인 폐교결정에 대응하고자 한다”며 “교육은 사업이기 전에 미래다. 적자를 이유로 쉽게 내쳐지거나 교육의 목적에 배반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원자는 졸업을 압둔 은혜초 6학년 학생 21명이 쓴 편지를 전했다. 한 학생은 “저에게 은혜초는 둥지와도 같다. 그런 둥지가 하루아침에 없어진다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 더 힘든 건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라고 썼다. 17일 오후 3시30분 기준 1600여명이 청원에 동의했다. 다음달 15일까지 20만명 이상이 동의하면 청와대는 30일 안에 답을 내놓는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는 기업체와 같이 수익률이 하락했다고 ‘폐업’이 자유로울 수 없다”며 은혜초가 폐교를 강행하면 법적 고발까지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시교육청은 새학기 은혜초 ‘정상화’를 목표로 재단 측, 학부모와 협의를 이어가며 매일 직원을 학교에 보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2월 말 폐교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은혜초는 17일 서부교육지원청에 “폐교 진행 절차와 관련해 교육청이 요구하는 여건을 갖출 때까지 학습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학교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문을 보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2월 말까지 폐교 시 재산 처분 계획 등 필요한 여건을 모두 갖추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면서 “학교법인은 당초 절차를 잘 몰라 폐교신청부터 했다고 한다. 막무가내로 폐교할 의사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교육청은 은혜초의 2017년도 결산상황을 보고 현재 수업료 수익으로도 운영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은혜초는 올해 신입생이 정원의 반 밖에 안 돼서 미리 폐교 조치를 취했다고 볼 수 있다. 법인 측과 협의해 여러가지 정상화 방안을 찾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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