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명찰 달아주는 사장님, 팔 깨무는 상사…직장인들 ‘미투’ 물결
ㄷ씨는 몇 해 전 거래처와의 회식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노래방에서 거래처 부장이 옆에 앉은 ㄷ씨의 손을 주무르고 허벅지를 만졌다. 나중에 거래처 사람에게 들으니 그 부장은 룸살롱에서 자주 접대를 받는다고 했다. ㄷ씨는 “아마 술에 취해 나를 룸살롱 직원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최근 국내 한 대기업에서 고추를 들고 ‘원샷’ 퍼포먼스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이 일었다. 당시 이 기업 측에선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ㄴ씨 회사의 상사들도 여성 직원의 외모를 품평하거나 멋대로 ‘짝짓기 놀이’를 하면서 ‘농담’ 혹은 ‘분위기를 좋게 하려는 유머’라 했다. 하지만 일부 간부들이나 직원들에겐 농담일지 몰라도 거기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성적 모멸감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농담일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남성 중심의 편견에서 나온 언행이 술자리에서의 추행을 비롯한 성폭력으로 이어지며 부엌가구 제조회사 한샘 사태에서 보듯 조직 내 피해자에 대한 2차, 3차 가해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성매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는 직장에선 회식문화나 접대문화라는 식으로 ‘업무’로 포장되기까지 한다. 거기에 조직의 위계질서가 결합되면 권력구조에서 낮은 위치에 있는 피해자들에겐 피하기도 맞서기도 힘든 덫이 된다.
여성학자들은 조직에서의 ‘사소한 농담’ 혹은 여성들의 진급을 막는 유리천장 같은 차별들과 직장 내 성폭행은 모두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며, 각기 다른 사건 같아도 따로따로 분리될 수 없는 행위라고 말한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하는 문제들이며 그저 ‘어디에서 멈췄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는 “성희롱(sexual harassment)이라는 말 자체도 ‘성적 괴롭힘’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희롱이라는 말에 숨겨진 가해자 위주의 사고방식이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사소한 문제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같은 절차를 거쳐 채용됐어도 여성들에겐 남성과 다른 직무를 맡기는 것, 임금에 차별을 두는 것은 ‘성범죄’라 불리지 않는다. 사회적·경제적 차별과 조직 내 성폭력 혹은 성매매 모두 여성을 ‘마음대로 해도 되는 대상’이라 여기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 부하직원이나 동료들에겐 용인되지 않는 대우나 행동을 취하게 되고, 여기에 저항하거나 불만을 표하면 다시 ‘여성’ 딱지를 붙여 비난한다.
직장에서의 차별, 성적 괴롭힘, 직장 밖에서 벌어지는 성매매 같은 현상들을 분리해서 보는 것은 결국 불평등한 구조에 대한 착시를 용인하는 것일 뿐이다. 이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 교육이 기본적인 인권교육에 포함돼야 하는 것”이라며 “특정인의 악행을 넘어 우리 사회의 문화 전체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 서지현 검사가 일깨워준 가장 큰 과제인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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