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이 일파만파다. 연희단거리패를 이끌던 유명 연출가 이윤택씨(66)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추가 폭로가 나왔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씨의 성폭력 의혹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글이 올랐다. 연극계의 또 다른 성폭력 가해자를 지목하는 피해자들의 글은 18일에도 이어졌다.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왕’처럼 군림하는 권력구조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연극인들은 공감·연대를 뜻하는 ‘위드유(#With You)’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연희단거리패 단원이었던 ㄱ씨는 지난 17일 한 온라인 연극·뮤지컬 커뮤니티 게시판에 이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2001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이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ㄱ씨는 결국 극단과 인연을 끊었다. 그는 “(2005년쯤 이씨가) 여자 후배 K는 자기 씨를 뿌려 낙태까지 하였다고 고백했다”며 “직접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며 자신이 가졌던 그 생각과 내뱉은 말을 철회하길 기다리고 있다”고 적었다.
연희단거리패를 이끈 연극 연출가 이윤택씨에 대한 ‘미투(#Me too)’ 운동이 연극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18일 오후 9시 현재 1만7500여명이 동참했다. 김기남 기자
이씨에 대한 ‘미투’ 운동은 지난 14일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 폭로로 시작됐다. 이씨가 극단 별채인 황토방에 여성 배우들을 불러 부적절한 안마를 시켰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황토방 안마’를 통한 강제추행 의혹은 다수가 경험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극단 단원이었던 이들은 방조자였다는 죄책감과 차마 밝힐 수 없던 열패감을 털어놓으면서 피해 사례를 증언하고 있다.
이씨는 19일 오전 직접 공개 사과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 남성중심시대의 못된 행태라고 자책하고, 스스로 벌을 달게 받겠다”고 했다. 극단을 통해 사과문을 올리고, 직위에서 물러났다. 이는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 사과가 아닌, ‘간접 사과’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아진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씨에 대한 진상규명과 구속수사, 연극단체의 방조와 공모 의혹 조사 등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동의한 이들은 게시 하루 만인 18일 오후 9시 현재 1만7500명을 넘어섰다. 청원글은 “연극계 전체에 만연해왔을지도 모를, 예술이란 미명, 폭력적 위계 아래 자행돼온 부조리와 불합리를 밝혀내고 끊임없는 반성과 성찰의 계기가 되는 신호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소망한다”고 적었다.
한국극작가협회는 지난 17일 이씨를 제명했다. 협회 이름으로 그를 문화예술위원회 심의위원에 추천한 것도 철회했다. 이들은 “시대적 분위기와 연극계에 끼친 업적을 이유로 지금의 사태를 외면하지 않겠다”며 “ ‘미투’ 운동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연극계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연극협회 정대경 이사장도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연극협회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협회는 가해자가 응당 치러야 할 책임을 묻고, 피해자의 회복과 치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연극협회는 여성단체 등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미투’ 운동은 연극계 전반을 향한다. 연극인들의 자발적 토론 모임 게시판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는 또 다른 성폭력 가해자를 폭로하는 글들이 게시되는 중이다. ‘선배’ 배우로부터의 강제추행, 수업과 연기지도를 빙자한 연출가의 강제추행과 성폭행 피해 등이다. 피해자는 작가와 연출가, 배우 등을 망라한다. 가해자들은 연극계에서 “왕” “무소불위의 권력” “영향력이 너무 컸”던 이들로 표현돼 있다.
폭로의 문제의식은 연극계 전체의 부조리한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는 데로 모아지고 있다. 철저한 위계서열 문화, 피해자와 그 주변을 침묵하게 하는 권력구조, 허약한 젠더 의식 등이 결합해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했다는 것이다.
공감과 연대를 뜻하는 ‘위드유’ 운동도 번지고 있다. 연극인들은 “지금까지 행동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연희단거리패가 합당하고 바른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직언할 것이다” 등의 글을 올리며 위드유 운동에 동참했다.
최영미 시인 “원로시인 ‘괴물’이 공식 사과하길…문단 내 성폭력 조사 범정부 기구 출범해야”
ㆍ페북에 글 “때가 되면 괴물 실명 공개…성추행 실제상황 밝힐 것”
최근 원로시인의 성폭력을 ‘괴물’이라는 시로 고발한 최영미 시인(사진)이 때가 되면 그 시인의 실명과 실제 성추행 상황에 관해 밝히겠다면서 다시 사과와 반성을 촉구했다. 최 시인은 문단 성폭력을 조사하는 공식기구가 출범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자신에 대한 왜곡 보도도 바로잡아달라고 했다.
최 시인은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언젠가 때가 되면 ‘괴물’의 모델이 된 원로시인의 실명을 확인해주고, 그가 인사동의 어느 술집에서 저를 성추행했을 때의 실제 상황, 그리고 1993~1995년 사이의 어느 날 창작과비평사의 망년회에서 제가 목격한 괴물의 (유부녀 편집자를 괴롭히던) 성폭력에 대해 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1993년경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술집에서 제가 목격한 괴물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따로 있는데, 제 입이 더러워질까봐 차마 말하지 못한다”고도 했다. 최 시인은 “저뿐 아니라 그로 인해 괴롭힘을 당한 수많은 여성들에게 괴물의 제대로 된 사과, 공식적인 사과와 반성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시를 읽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최 시인은 “문단 내 성폭력을 조사하는 공식적인 기구가 작가회의만 아니라 문체부, 여성단체, 법조계가 참여하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조사 및 재발방지위원회가 출범하기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최 시인은 “JTBC <뉴스룸> 인터뷰 이후 ‘최영미 시인이 문단에서 수십명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왜곡 보도를 바로잡아달라”면서 “최영미는 수십명에게 성추행당한 적이 없다. 1992년 등단 이후 제가 원하지 않은 신체적 접촉(성추행)을 했던 남자는 네 명”이라고 썼다.
‘괴물’이 ‘황해문화’에 실린 뒤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으나 거절했다는 최 시인은 “괴물과 괴물을 키운 문단권력의 보복이 두려웠고 그들을 건드려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 시인은 한참 잊고 지내다 서지현 검사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이후 시 ‘괴물’이 기사화됐고 “문단 내 성폭력이 더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가 겪은 슬픔과 좌절을 이제 문단에 나오는 젊은 여성문인들이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며 방송에 나갔다”고 밝혔다.
최 시인은 “여러분의 격려와 응원 덕분에, 이제 제게 괴물과 괴물을 비호하는 세력들과 싸울 약간의 힘이 생겼다”면서 “문단 내 성폭력이 구시대의 유물로 남기를 바라며, 저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할 것이다. 더 많은 여성들이 미투(#Metoo)를 외쳐주라”고 글을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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