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통지 받았을 때 그야말로 ‘멘붕’이었어요. 나가게 되면 저희는 진짜 아무것도 손에 쥐는 게 없거든요.” 한국지엠 군산공장에서 14년째 일하고 있는 최영석씨(46·가명)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최씨는 하도급업체 ‘○○테크노’ 소속이다. 이른바 ‘사내하청 비정규직’이다. 지난 26일 그와 동료들은 회사에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당사는 군산공장 폐쇄 결정으로 한국지엠과 도급계약이 종료되므로 (중략) 4월1일부로 근로계약을 해지합니다.”
군산공장이 문을 닫아도 정규직 직원들은 다른 공장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들에겐 대량 실직이 눈앞에 닥쳤다. 28일 ‘한국지엠 군산공장 비정규직 해고 비상대책위원회’는 군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내하청 비정규직 200여명이 3월 말까지 회사를 떠나라는 일방적인 통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28일 서울 세종로 공원 앞에서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노조원들이 모여 ‘공장폐쇄 철회! 구조조정저지! 한국지엠 30만 일자리 지키기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이준헌 기자
군산공장에는 도급업체 4곳에 소속된 비정규직 200여명이 근무한다. 소속 업체가 두세 번씩 바뀌는 와중에도 20년 가까이 정규직들과 한 공장에서 일해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정규직들이 꺼리는 더 위험하고 힘든 작업을 하는데도 급여는 60% 수준이다. 그럼에도 생계를 위해, 그리고 정규직 전환이라는 가느다란 희망도 품어가면서 일해왔다. 그런 만큼 해고의 충격은 더 컸다. 기자회견에서 비대위는 “비정규직 노동자란 이유로 부당한 처우도 참아냈지만, 해고라는 벽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고 호소했다.
어느 정도는 예견된 일이다. 한국지엠이 지금까지 구조조정에 대응해온 모습을 보면 그렇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먼저 해고의 칼날을 받아내는 쿠션 역할이었다. 군산공장은 2015년에도 사내하청 비정규직 1000여명을 내보냈다. 애초에 회사가 공정 일부를 비정규직으로 돌린 이유는 감원이 필요할 때 쉽게 자르기 위해서였다. 가동률이 20%대까지 떨어져 공장 폐쇄를 맞았고, 이제는 그나마 일자리를 지켰던 나머지 200여명까지 내쫓길 위기에 놓였다.
비정규직들에겐 해고가 가져올 타격도 곱절 이상이다. 비대위는 “정규직에게는 희망퇴직 시 퇴직금 외에도 위로금과 자녀학자금, 차량구입지원금 등을 준다고 하는데 저희에게는 어떤 위로금도 생활지원금도 없다”고 했다. 실업급여가 나오긴 하지만, 급여액을 산정하는 기준인 기본급이 최저임금 수준이어서 그걸로 생계를 유지하긴 힘들다.
비정규직들의 위기는 군산공장만의 일이 아니다. 국내 한국지엠 전체 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약 2500명이다. 회사가 군산공장 정규직들을 부평이나 창원 공장 등에 배치할 경우 그곳 공장들의 비정규직들이 자리를 내줘야 할 판이다. 창원공장 비정규직노조의 진환 사무장은 “정규직을 몰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현장 비정규직들의 불안감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구조조정 도미노는 철수설이 흘러나오던 지난해부터 이미 시작됐다.
부평공장은 지난해 10월부터 비정규직들에게 맡겼던 공정을 정규직들에게 다시 내주는 ‘인소싱’을 하고 있다. 가동률이 70%로 높은 편인 창원공장도 올 초 비정규직 140명을 내보내고 그 공정을 정규직으로 채웠다. 해고자들은 108일째 공장에서 농성 중이다.
정부는 군산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실업급여를 두 달 더 주는 정도로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와 한국지엠이 협의해 타 공장 하청업체 재취업이나 다른 지역으로의 취업알선 같은 대책을 적극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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