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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돈 벌기

기초생활수급자가 점주로...경기도 시흥엔 ‘착한 편의점’이 있다

경기도 시흥시의 대야초등학교 부근 모퉁이엔 문을 연 지 1년이 된 ‘GS25 시흥행복점’이 있다. 평범한 편의점처럼 보이지만 운영체계가 다른 곳과 완전히 다르다. 이 편의점의 점주인 전경자씨(58)는 올 초까지만 해도 기초생활수급자였다. 그는 약 3년간 정부의 자활사업으로 생계를 이어왔고 지난 1년 동안은 ‘기업연계형 자활사업’의 일환으로 이 편의점에서 일을 배웠다. 1년이 지난 올 4월부터 전씨는 이곳의 점주가 됐다.

3년 전만 해도 전씨는 자신의 운영하는 점포가 생길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IMF 구제금융을 전후해 남편은 병을 얻어 돈을 벌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보험설계사였던 전씨의 소득도 곤두박질쳤다. 남편 병원비와 딸의 학비를 대기 위해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이곳저곳에서 일을 했지만 고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GS시흥행복점의 전경 _ 전경자씨 제공


50대로 접어들면서 일자리 잡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는 컴퓨터로 설계·도면을 그릴 수 있는 CAD 기술을 배운 상태였다. 그러나 CAD 기술인이 필요하다는 구인공고를 보고 전화를 해도 회사에선 그의 나이를 묻고는 퇴짜를 놓기 일쑤였다. 전씨는 결국 파산에 이르렀고 남편의 병세는 더 악화됐다. 그는 주변사람들의 조언으로 주민센터의 도움을 받아 ‘자활근로’를 시작했다.

2014년 ‘경기시흥 작은자리 지역자활센터’에 들어간 그는 처음에는 돌봄·가사·청소노동을 하는 여러 업체에 몇달씩 파견됐다. 그러다가 GS리테일과 연계한 자활사업장인 ‘GS25 내일스토어’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GS25 내일스토어는 ‘사회공헌형 편의점’으로, 전씨와 같은 자활참여자를 고용해 운영하는 곳이다. 전씨는 이제까지 이 업체, 저 업체에서 조금씩 일해왔던 터라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을 원했다. “저요”라고 얼른 손을 들었다. 그리고 지난 1년간 편의점 운영에 노하우가 생긴 그는 ‘1호 자활기업’의 대표이자 편의점 점주가 돼 보겠느냐는 정부의 제안에 용기를 갖고 응했다.

보건복지부가 29일 사회공헌형 편의점 중 한곳인 경기도의 GS25 시흥행복점이 최초로 ‘자활기업’으로 전환됐다고 밝혔다. GS25 시흥행복점은 이제 자활기업이 운영하게 된다는 뜻이다.

자활기업은 자활사업 참여자,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취약계층이 정부·지자체·민간기업의 도움을 받아 설립한 기업을 뜻한다. GS25 시흥행복점은 전씨가 대표인 자활기업 ‘내일’에 소속돼 있다. 이 자활기업은 전씨와 비슷한 처지의 자활참여자와 지역자활센터 등 주주 5인으로 구성돼 있다.편의점에서 나오는 수익 가운데 직원들의 월급을 주고 남은 돈은 자활기업 ‘내일’에 돌아가며, 넉넉한 돈이 모이면 또다른 자활사업도 벌이게 된다.

자활기업의 연착륙을 위해 지자체는 한시적으로 자활기업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GS리테일은 가맹비를 면제하고 지원금을 보태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기업에 필요한 회계·법률 전문인력을 지원한다.

GS25 시흥행복점의 점주인 전경자씨가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 GS25 시흥행복점은 전씨 같은 자활참여자 동료들과 지역자활센터가 만든 자활기업 ‘내일’이 운영하고 있다. | GS리테일 제공

GS25 시흥행복점의 점주인 전경자씨가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 GS25 시흥행복점은 전씨 같은 자활참여자 동료들과 지역자활센터가 만든 자활기업 ‘내일’이 운영하고 있다. | GS리테일 제공

어엿한 편의점 점주, 기업의 대표가 됐지만 전씨에게는 아직 고민이 많다. 이달부터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의료급여가 끊겨버렸다. 오랫동안 생활고에 시달린 터라 여러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그는 병원비·약값이 많이 필요하다. 편의점 점주이니 그때 그때 번 돈으로 병원비를 대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점주인 자신도 일한 만큼만 월급을 받겠다고 한 상태였고 아직 월급정산 시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일단 병원 치료를 미뤄둔 상태다.

게다가 월급이 나온다 해도 병원비와 생활비, 주거비를 모두 충당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그동안 ‘자활참여자’로서 편의점에서 일할 때는 고정적으로 80~90만원을 받았고, 기초생활수급자였기 때문에 정부에서 의료급여 등의 지원도 따로 받았다. 전세임대 지원도 받아 주거도 어렵지 않게 해결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당한 수준의 의료비를 스스로 감당해야할 뿐 아니라 내년엔 전세기간이 만료되기 때문에 주거비도 지금부터 준비해놓아야 한다.

버는 만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전씨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동료들과 함께 편의점에 매달리고 있다. 그는 “광야에 나온 것 같은 기분이라 불안하다”면서도 “그래도 당당하게 소신껏 일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복지부는 지난해부터 GS리테일 외에도 도드람 양돈농협과 협력해 자활사업 참여 취약계층에게 프랜차이즈 매장 경영 노하우와 직업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 120여명의 취약계층이 GS내일스토어 편의점과 도드람 본래순대 매장 총 18곳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