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심 강한 반달가슴곰 KM-53은 더이상 지리산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어진다. 환경부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방향을 ‘번식’에서 ‘서식지 관리’로 전환한다고 2일 밝혔다. 숫자가 늘어난 반달가슴곰이 지리산 바깥으로 가도 더이상 막지 않겠다는 의미다.
반달가슴곰을 지리산에 풀어주기 시작한 것은 2004년이다. 지난 겨울 8마리가 태어나면서, 지리산에 사는 반달가슴곰은 56마리로 늘었다. 야생에서 태어난 자식 곰들이 새끼를 낳은 ‘손주곰’도 3년 연속 확인됐다. 2020년까지 야생에서 반달가슴곰이 생존할 수 있는 규모인 50마리까지 늘린다는 당초 목표가 2년 빨리 달성됐다.
2017년 경북 김천 수도산에서 나타난 반달가슴곰의 모습. 당시 사람들이 놓아둔 초코파이와 주스를 먹는 모습이 포착됐다. | 사진 생명의숲
그러자 새로운 숙제가 떨어졌다. 반달가슴곰들에게 지리산이 비좁아진 것이다. 반달가슴곰은 20~25년을 사는데, 암컷은 3살부터 15살 사이에 번식을 할 수 있다. 임신기간은 7개월 반, 한번에 한두마리를 낳는데 일반적으로 2년에 한 차례 출산한다. 환경부는 지리산에서 수용가능한 개체수를 78마리 정도로 추정한다. 생태를 고려하면 2027년에는 100마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이니, 다른 서식지를 찾는 곰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2014년부터 광양, 곡성, 김천 등 지리산 밖으로 나간 곰들이 확인됐다. 특히 지난해 KM-53(개체명)의 ‘대모험’은 복원 방향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불렀다. 2015년 10월 지리산에 방사된 이 곰은 지난해 6월과 7월 두 차례 경북 김천 수도산에서 발견됐다. 백두대간을 따라 100㎞를 이동한 것이다. 환경부가 주민과 곰의 안전을 고려해 붙잡아다가 지리산에 다시 풀어줬으나, 자연에서 스스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제 겨울잠에서 깨어난 KM-53은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어 언제든 수도산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환경부는 앞으로는 곰들이 지리산을 벗어나도 붙잡아오지 않고 추적 관리만 하기로 했다. 서식지가 넓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변상윤 사무관은 “다만 주변 양봉 농가나 농작물에 피해를 입힐 경우 전문가 판단 하에 재포획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서식지가 확대되면 백두대간 생태축이 반달가슴곰의 ‘고향’이 되고, 인간과 ‘공존’하게 된다. 반달가슴곰이 1회 이상 활동했던 지역이나 활동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인 전남·경남 등 5개 도와 17개시·군이 참여하는 ‘반달가슴곰 공존협의체’를 구성해 올해부터 협의에 들어간다. 2022년까지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 등 중남부권역으로 이어지는 생태축이 끊긴 곳들을 조사해 다시 잇는다. 고속도로 폐도를 복원하고 생태통로를 조성한다.
주요 서식 가능지에서는 주민, 지자체, 시민단체와 함께 덫이나 올무 따위를 없애고 밀렵을 단속하기로 했다. 반달가슴곰의 출산시기나 봄철 이동시기에는 국립공원 탐방로를 일시 통제하거나 예약탐방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반달가슴곰은 스스로 사람을 피하는 성향이 있지만 출산이나 이동시기에는 예민할 수 있다. 안내 현수막과 진입금지 방송시스템을 확대 설치하고, 대피소와 탐방로마다 곰 활동지역과 대처요령 등을 알리기로 했다. 출입이 잦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곰 퇴치 스프레이나 호루라기를 보급한다. 양봉,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전기울타리를 설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환경부는 오는 4일 전남 구례군 지리산 생태탐방원에서 ‘반달가슴곰 공존협의체 구성 및 공존선언식’을 개최한다. 선언식에선 ‘지리산 시인’으로 불리는 박남준 시인이 감수한 선언문이 낭독된다.
“사람으로 인해 흔적이 끊기고 모습이 없던 / 반달가슴곰들 되살리고 자랐으니 / 어미의 품안 지리산을 떠나 / 세상 속으로 보내줘야 하는 때 / 함께 살아가려고 한다 / 수도산에서 덕유산에서 속리산에서 / 반달가슴곰은 살아갈 것이다 / 백두대간과 정맥을 따라 남북을 오갈 것이다 / 그일 사랑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 고통과 상처들도 사랑 속에 담겨 치유될 것이다 / 사랑은 아끼고 따뜻하게 배려하는 것 / 반달가슴곰으로 인해 / 이 나라의 자연이 풍요로워 질 것이다 / 반달가슴곰으로 인해 우리가 대자연 앞에 / 겸손해지며 향기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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