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저만치 물러난 강바닥에서 모래를 한 움큼 쥐었다가 펴자 손가락 사이로 금색 가루가 스르르 떨어졌다. 강 복판 모래톱에는 왜가리 여남은 마리가 긴 다리를 뽐내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하류로 막힘없이 흐르는 강물 위로 봄빛이 희게 부서졌다. 굽이쳐 흐르는 금강을 막던 4대강 보가 열리고 다섯 달 만에 일어난 변화다.
정부는 올해 말 4대강 보 처리방안 발표를 앞두고 보 수문을 열어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금강 상류부터 하류로 이어지는 세종·공주·백제보는 수문을 완전히 개방하기로 이미 결정했다. 4대강사업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겠다는 뜻이다.
지난 4일 금강 상류에 있는 세종보를 넘어 강물이 흐르고 있다. 세종보를 개방한 지 5개월여 만에 거대한 모래톱이 형성됐다. 수문을 열자 4대강사업으로 훼손됐던 자연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강윤중 기자
지난해 11월 이런 계획을 발표한 뒤 보를 열어 수위를 낮춰왔고, 지난 1월 세종보가 완전히 열렸다. 공주보도 두 달 뒤 개방됐다. 백제보도 문을 열었지만 주변 농가들이 농업용수 공급에 어려움을 겪어 다시 닫았다. 금강의 변화는 앞으로 4대강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금강과 낙동강 4대강 수문 개방 현장조사에 나선 환경운동연합과 대한하천학회 전문가들을 따라 지난 4일 금강을 찾았다. 스스로 회복하는 자연의 경이로운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현장조사단은 세종보부터 백제보에 이르는 지점 5곳에서 강물을 채수하고 저질토(강바닥 흙)를 채취했다. 세종보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4대강 보 16개 중 전면 개방된 곳은 세종보뿐이기 때문에 이곳의 생태계 복원 상황이 향후 4대강 전체 ‘재자연화’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세종시 연기면 행정중심복합단지 아파트에 둘러싸인 세종보에는 2.8~4m 높이의 보 구조물 6개가 있다. 문을 눕힐 수 있는 가동보와 제자리를 지키는 고정보가 번갈아 가며 서 있다. 가동보는 완전히 내려졌지만, 콘크리트 구조물인 고정보는 아직 그대로다.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오준오 교수 연구팀이 보 주변에서 시료를 채취하기 시작했다. 화학적산소요구량(COD) 등 다양한 수질 지표와 강바닥에 쌓인 저질토의 성분을 알아보려는 게 목적이다.
먼저 가운데가 크게 벌어진 금속추처럼 생긴 채니기(採泥器)를 진흙 바닥에 던졌다. 채니기가 ‘입’을 다물면서 진흙을 한가득 머금었다. 그다음에는 원통형의 아크릴 물통처럼 생긴 채수기(採水器)를 강물에 던졌다. 밧줄에 매여 있는 추를 풀자 양편의 뚜껑이 닫히면서 물이 채워졌다. 채취한 물과 흙은 연구소로 보내져 2~4주 뒤에 분석결과가 나온다.
실지렁이 사라지고 갈색 흙으로
수치를 당장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맨눈으로 보기에도 변화는 분명했다. 이전에 물의 경계였을 강변 조경수 아래로 펄밭이 넓게 드러났다. 철새들이 쉴 수 있도록 박아놓은 나무말뚝과 선착장을 표시하는 푸른색 기둥을 보며 예전 풍경을 그려봤다. 보 문이 잠겨 물에 가라앉아 있는 사이에 퇴적해 쌓인 진흙의 깊이가 1m에 이른다. 그걸 삽으로 퍼내니, 위쪽 진흙은 갈색이 확연했다. 4대강사업 뒤 곳곳에서 ‘악명’을 떨친 새빨간 실지렁이와 깔따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염에 강한 혐기성 생물인 이들은 대표적인 4급수 지표종이다. 보 문을 열기 전에는 물 빠진 직후에 흙을 한 움큼 뜨면 수십마리가 꿈틀댔다고 했다.
진흙층 위쪽은 다시 자연상태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확실했지만, 흙을 좀 더 깊이 파내자 연탄색 오니(汚泥)가 나왔다. 다행히도 악취는 나지 않았다. 흐르는 물에 오물이 씻겨나가고 강바닥에 산소가 들어가면서 흙이 다시 깨끗해지고 있는 것이다.
시료를 맨 먼저 채취한 곳 강변 언덕에는 세종보 수력발전소가 서 있다. 2011년 8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하나로 가동을 시작한 발전소다. 그 주변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어 물이 원활하게 흐르기 힘든 곳이다. 그곳에서도 자연의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강 반대편과 비교해봤을 때에는 흐르는 물과 고인 물의 차이가 확연했다. 막고 있는 구조물이 없는 맞은편 강가에는 모래사장이 깔렸다. 고운 모래와 자갈이 드러난 모래톱에서 물떼새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강물은 투명했다. 여울에선 흰 포말을 만드는 물살의 흐름이 보였고, 얕은 물가에는 모래가 이리저리 흘러내렸다. 노랫말에서나 듣던 ‘반짝이는 금모래’였다.
“와, 참 좋네요.” 보고 있던 이들에게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오준오 교수가 거듭 말했다. “원래 우리 하천은 모래하천이에요. 이게 금강의 참모습입니다. 진짜 모습이 이런 거예요.”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강폭이 400m 정도인데 현재 모래가 드러난 부분이 200m 정도 될 것”으로 어림했다.
금강(錦江)은 백제 웅진 시절 ‘곰강’에서 유래했지만, 굽이쳐 흐르는 물길이 비단결처럼 아름다워 비단 금(錦)자를 쓰게 됐다고도 한다. 밀고 당기고, 부딪쳤다 밀려나는 물살의 흐름에 따라 한 달 뒤면 또 다른 모습이 될 거라고 했다.
흐르는 강은 공주와 부여로 이어진다. 하류로 갈수록 보의 크기도 크다. 공주보 상류 2㎞ 지점인 쌍신생태공원으로 옮겨갔다. 높이가 7m에 이른다는 공주보도 완전히 열려 가동보의 수문이 물 위에서 1m 정도 들려 있었다. 하지만 갇힌 물의 ‘높이’는 세종보보다 높다. 더 아래 백제보가 닫혀 있는 탓이다.
공주보 주변엔 여전히 ‘펄조개’
공주보 수문이 열리면서 드러난 펄밭은 잡초밭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강바닥에 모래가 쌓이면서 작은 섬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보 주변과는 아직 복원된 정도에 차이가 났다. 공주보와 맞닿은 지점에는 시커먼 펄층이 두껍게 깔렸다. 맨눈으로도 수질의 차이가 보였다. 채수한 강물은 갈색 빛이 돌았다. 갈라진 펄밭에는 어른 손보다도 큰 펄조개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원래는 저수지나 늪지에 사는 생물이다. 이 일대가 최근까지도 ‘고인 물’이었음을 실감했다.
고정보를 따라 걷는데 벽면 위쪽에 물이 가득 찼을 때의 흔적을 보여주는 시커먼 물자국이 보였다. 수위가 내려갈 때 물고기들의 이동을 돕는 어도는 쓸모를 잃은 채 바닥을 드러냈다. 이렇게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는 곳들은 물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보를 모두 연들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다. 수문을 여는 것은 물론 이런 구조물들을 모두 철거해야 한다고 환경전문가들이 말하는 이유다.
굽이진 강변도로를 따라 백제보로 이동하다 잠시 방향감각을 잃었다. 자동차는 하류로 향하는데 강물은 상류로 역류하고 있었다. 물이 갇혀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릇에 담긴 물처럼 갇혀 있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날 매섭게 몰아친 강바람을 따라 표층의 물이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백제보는 높다란 수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래도 강물이 힘겹게 수문을 타고 넘어 아래로 흘렀다. 아직은 강바닥이 드러난 곳이 없어, 배 위에서 흙과 물을 담았다. 악취나 실지렁이는 없었다. 아직 봄인 데다 요사이 비가 많이 와서 예년보다는 나은 상태라고 했다.
선착장 주변을 둘러보니 이상한 막대들이 눈에 띄었다. 녹조를 제거하는 수차들이다. ‘금강 요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이 주변이 “녹조 제거의 테스트베드(시험대)”라고 말했다. “생태공원을 만들어 놓기는 했는데 녹조가 워낙 심각하니까 공기주입 버블기부터 녹조제거선까지 온갖 수질 개선 장비를 설치했던 곳”이라고 했다.
공원에는 관상용 상수리나무와 꽃들을 심고, 축구장도 만들었다. 김 기자는 풀만 무성한 강변을 둘러보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가져다 심은 꽃들은 토착 식물에 밀려 진작에 죽었고, 축구장에서 공 차는 건 이제까지 보지도 못했습니다. 상수리나무는 좋다고 하대요. 동네 할머니들이 산까지 도토리 주우러 가지 않아도 돼서.” 사업비만 20조원에 해마다 유지관리비가 1000억원씩 든다는 4대강사업이 남긴, 웃지 못할 ‘선물’이었다.
낙동강 모래밭도 되돌아와야
공원 부근 전망대에 오르자 거대한 백제보가 한눈에 들어왔다. 붉은 글씨로 쓰인 “백제보 수문 개방 결사반대”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지난해 수위를 낮추자 이 일대 부여군 비닐하우스에 댈 지하수가 모자란다는 민원이 접수됐고, 두 달 만에 수문을 다시 닫았다. 4대강사업을 할 때 관정을 새로 만들면서 충분히 깊게 파지 않은 곳들에서 농업용수가 부족해졌다고 한다. 앞으로 보상이나 조정이 필요한 문제다. 금강 주변에서 지역 축제를 여는 공주시도 축제를 운영하기 힘들어진다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강물이 흐르고 모래가 복원되고 새들이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봤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사람 사이의 일들’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세종보에서 백제보까지 현장조사로 얻은 물과 흙을 차례로 비교했다. 물은 하류로 갈수록 흐렸다. 흙은 아래로 갈수록 입자가 작고, 빛깔도 어두웠다. 이날 현장조사는 4대강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눈에 보여줬다. 염형철 물개혁포럼 대표는 “5개월 만에 이 정도로 좋아질 줄은 몰랐는데, 자연의 복원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감탄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권이 바뀐 뒤에도 수문 개방에 대해 다양한 우려를 내놓는 이들이 있지만, 현장조사 결과는 보를 열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실증적 증거”라고 말했다.
정부는 4대강 보의 수문들을 열어 모니터링을 한 뒤 그 결과를 반영해 올해 말 4대강 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발표할 계획이다. 여러 곳에서 수위를 낮췄지만, 실제로 환경이 개선되는 효과를 확인하려면 ‘찔끔 개방’으로는 안되고 물높이를 더 많이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현장조사팀이 5일과 6일 찾아간 낙동강에서는 오염이 개선되는 효과를 거의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신재은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은 “낙동강 상류는 물 흐름이 정체돼 검은 펄이 나오고 실지렁이, 붉은깔따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낙동강도 결국은 되돌아갈 것이다. 신 국장은 “수문을 연 낙동강 하구 합천창녕보 아래에는 지천에서 유입된 양질의 모래가 세종보보다도 곱고 넓게 쌓여 있어서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면서 “4대강은 사람들이 마시는 물이기도 하므로 힘써서 열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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