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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돈 벌기

‘한국식으로 굴리고 미국식으로 자른다’ 한국오라클 노동조합 전면파업

‘한국식으로 굴리고 미국식으로 자른다’ 한국오라클 노동조합 전면파업

‘외국계 기업’이라고 하면 높은 연봉과 선진적인 근무환경을 즐길 수 있는 직장을 흔히 떠올린다. 자유로운 분위기, 일과 삶의 균형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과는 괴리가 크다. 미국계 정보기술(IT)기업인 한국오라클 노동조합이 “오래 근무해도 임금이 오르지 않고 장시간 노동도 심각하다”며 16일부터 사흘간의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외국계 IT 기업 노동자들의 전면파업은 2000년 한국후지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 파업 이후 18년만이다.

한국오라클 노조에 따르면 이 회사 직원들은 낮은 임금을 받으며 길게는 주당 100시간 넘게 일하면서도 고용불안에 시달려 왔다. ‘고용유연성’을 강조하는 외국계 기업의 특성 탓이다.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주로 팔던 한국오라클은 지난해부터 클라우드 서비스 위주로 사업영역을 바꿨다. 노조에 따르면 회사는 사업 재편 뒤 클라우드 전담 영업인력 100여명을 새로 뽑으면서 비슷한 규모의 인력을 권고사직이나 희망퇴직 등의 형태로 내보냈다. 노조는 “신규채용을 계속하면서 기존 직원에게는 권고사직을 강요하는 일이 일상이다. ‘필요 없으면 자르고 새 사람을 뽑는다’는 게 회사의 기본 방침”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만들어진 노조는 1년도 안 돼 조합원 수가 550여명으로 불어났다. 전 직원 1200여명 중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가입한 것은, 직원들의 불만이 쌓일 대로 쌓였기 때문이다. 김철수 노조위원장은 “실적이 오르고 물가도 올랐지만 많은 직원들의 임금이 장기간 동결 상태”라며 “10여년 전의 연봉을 그대로 받는 일부 직원들은 새 가이드라인에 맞춰 연봉협상을 하고 들어온 신입사원보다도 적게 받는다”고 말했다.

잦은 야근과 주말 특근 등 장시간 노동도 심각하다. 노조는 상당수 엔지니어들이 주 6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노조에 접수된 제보 중에는 “주당 110시간까지 일했다”는 내용도 있다. 노조는 “1차 파업 뒤에도 사측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무기한 파업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17일 대의원회의를 열고 파업을 연장할 지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