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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 보수도 “무상교육 확대”…달라진 교육감 선거

6·13 지방선거를 열흘 앞둔 3일 ‘인스타산악회와 멀티암벽’ 회원들이 서울 수락산 하강바위에서 자일에 매달려 투표 독려 캠페인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6·13 지방선거를 열흘 앞둔 3일 ‘인스타산악회와 멀티암벽’ 회원들이 서울 수락산 하강바위에서 자일에 매달려 투표 독려 캠페인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6·13 전국 시·도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쏟아져 나온 공약의 핵심은 ‘무상교육 확대’다. 무상급식을 늘리고 교복·수학여행비를 지원해주고, 고교까지 무상교육을 단계적으로 확대하자는 데 진보·보수 성향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후보들이 목소리를 같이하고 있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들의 정책공약은 대체로 엇비슷하다. 2007년 부산에서부터 시작된 교육감 직선제가 10년을 넘기면서 교육현장에서 일어난 변화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집약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 ‘포퓰리즘’이라 비판했던 무상급식이 대표적이다. 이 정책이 학생·학부모, 지역사회의 지지를 받자 이제 진영을 막론한 대세 공약이 된 것이다. 혁신학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합법화 문제, 자사고·외고 등을 폐지할지 여부 등 당초 쟁점으로 예상됐던 이슈들은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그 대신에 교육에서 시민의 보편적 권리를 확대하고 공적영역을 늘려가야 한다는 데 후보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7개 지역 교육감 후보로 총 59명이 출마한 이번 선거에서 급식은 물론이고 교복·체육복·수학여행·입학금·수업료·체험학습·교과서비 등 학부모의 거의 모든 부담을 없애는 ‘무상교육’이 화두다. 서울의 경우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조희연 후보는 물론이고 보수우파를 대변하겠다면서 출마한 박선영 후보조차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무상교육·무상급식 추진’을 내걸었다. 무상급식 비율이 50~60%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지역인 경남·울산·대구에는 ‘무상’ 공약이 유독 많다. 경북에서는 문경구 후보를 제외한 모든 후보가 무상급식 공약을 내놨고 울산에선 무상급식·무상교복 등을 넘어서 유치원 무상교육, 수학여행비 전액지원 같은 공약까지 나왔다.

■ 대세는 ‘교육비 줄이기’

교육감 직접선거는 2007년부터 교육감 임기가 끝날 때 지역별로 치러지다가 2010년부터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됐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치러진 2010년과 2014년 선거에서 지자체장은 보수, 교육감은 진보라는 구도가 형성됐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사실상 큰 의미가 없어졌다.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배울 권리’를 보장해주는 무상교육이 대세가 된 것이다.

교육계 진보진영은 ‘친환경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로 상징되는 그간의 정책을 확장하거나 보완하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중도나 보수 성향으로 분류될 수 있는 후보들도 대체로 그동안 교육 주체들의 지지를 받아온 무상교육 정책을 벤치마킹했다. 다만 혁신학교에 대해선 ‘기초학력 신장’, 학생인권 강화에 대해서는 ‘교권 강화’라는 보완책을 제시하는 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교육의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모든 후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현 교육감인 서울의 조희연 후보는 친환경 무상급식을 강화하겠다면서 그간의 3무(GMO, 방사능, 농약 제로) 무상급식 정책에 첨가물, 항생제를 추가해 ‘5무 무상급식’으로 확장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초·중 국공립학교뿐 아니라 고등학교와 사립초등학교에도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재선을 노리는 경기도의 이재정 후보는 단계적인 ‘고등학교 무상교육’ 공약을 들고 나왔다. 고교 입학금, 교복·체육복·교과서비, 체험학습비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진보 성향의 송주명 후보는 무상교복·무상급식·무상돌봄뿐 아니라 방과 전·후 무상학습을 약속했다. 보수 성향의 김현복 후보도 ‘삼시세끼 무상급식’을, 중도 성향의 배종수 후보는 ‘초·중·고 보편적 무상교육 확대’를 공약했다.

보수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경남·울산·대구의 변화도 눈에 띈다. 경북에서는 후보 5명 중 4명이 무상급식을 약속했다. 울산의 권오영·박흥수 후보는 유치원 교육비를 없애겠다고 했고, 노옥희·정찬모 후보는 수학여행 비용을 전면 지원한다고 했다. 대구에서는 지지율이 가장 높은 강은희 후보는 물론 김사열 후보도 친환경 무상급식을 약속했다. 세종·충남에서도 교복·수업료·기타교육비를 포괄하는 무상교육 공약(세종 최교진 후보)과 무상급식 및 중학교 무상교복(충남 김지철 후보) 약속이 앞다퉈 나왔다. 세종의 송명석 후보는 중·고교 학생들에게 해외여행비를 주고, 세종시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이들에겐 대학 학비와 기숙사비까지 내준다고 했다.

교육계 진보 텃밭인 강원·전남·전북·광주·제주에서도 대체로 교복·수업료 무상 공약이 많이 나왔고, 무상급식을 강화한 ‘GMO 없는 급식’ 등의 공약도 나왔다. 부산의 함진홍 후보는 학생들이 충분히 잠을 잘 수 있도록 오전 9시에 등교하게 하겠다며 학교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돌봄정책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인천의 도성훈 후보는 유치원 온종일 돌봄교실을 2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고 세종의 최태호 후보는 유치원 방과후 과정을 맞벌이·다자녀 가정에서 전체로 확대하고 초등학교 돌봄교실도 오후 6시까지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광주의 이정선 후보는 ‘광주시민교육지원청’을 설립해 돌봄부터 학교 밖 청소년 문제까지 전담케 하겠다고 약속했다.

■ 학력 신장·교권 보호 ‘보완성 공약’

중도·보수 진영이 차별화를 위해 내세우는 것은 ‘학력 신장’과 ‘교권 보호’다. 서울의 조영달 후보는 서울형 혁신학교의 ‘기초학력 미달’ 고교생 비율이 15.3%로 평균인 7.6%보다 많다면서 체력, 학력, 인성, 시민성, 적성·진로 탐구 역량을 평가하는 중학교 기초역량 보장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박선영 후보는 ‘기초학력보장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역시 보수 성향인 부산의 김성진 후보와 충북의 심의보 후보도 기초학력 미달 학생 전담교사 배치, 멘토링 프로그램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조영달 후보와 박선영 후보는 교권 신장·교권 확립 대책도 내놨다. 하지만 “진보도 교권 보호 정책을 펼칠 수 있다”(조희연 후보)며 진보 성향 후보들도 교권법률지원단, 교원힐링센터 같은 제안을 내놓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학생인권을 중시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지만 그 과정에서 교사들의 권리가 침해됐다는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중도와 진보 후보들이 경쟁하는 전북에서는 모든 후보가 교권 보호 대책을 약속했다.

지역별로도 조금씩 차별화된 이슈들이 눈에 띈다. 서울의 경우 조희연 후보는 자율형 사립학교와 외고 등의 폐지를 약속했고 중도 진영의 조영달 후보는 추첨제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반면 박선영 후보는 학생·학부모에게 학교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교 서열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데에는 보수진영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최근 교육감 3명이 잇따라 비리사건에 연루됐던 울산에서는 노옥희·정찬모 후보가 성범죄와 급식비리 등 교육비리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교육감 2명이 구속된 인천에서도 출마자 모두 청렴을 강조하며 ‘비리신고센터’ ‘무관용 원칙’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공개’를 약속했다.

■ 미세먼지·편한 교복·남북교류

최근 화학물질과 환경 이슈가 부각되면서 강원도의 민병희 후보는 도지사·시장·군수 후보자에게 제안하는 공동 공약으로 ‘미세먼지·라돈 걱정 없는 청정 학교’를 내세웠고 서울 조희연 후보는 전 교실의 석면 검사와 안전한 석면 해체를 약속했다. 충북 심의보 후보는 학교 내 빈터에 나무로 된 놀이공간을 만드는 ‘그린텐트’ 사업을 약속했다.

한반도 화해 무드에 맞춰 각 지역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지난달 17일 ‘평화에서 통일로, 민주진보교육감 광주선언’을 통해 남북 학생 교류 확대 등을 내세웠다. 이들은 평화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 비무장지대(DMZ) 생태 교육, 남북학생 평화축제와 공동수업 등을 제안했다. 경북의 이찬교 후보는 ‘평화통일교육 활성화 지원 조례’를 만들어 통일교육을 전면 실시하고 남북 교육교류를 활성화하겠다고 했다. 인공지능(AI) 기반의 사이버 가정교사(서울 조영달 후보), 학생들이 급식 만족도를 평가하는 ‘헝그리스쿨 앱’(대구 홍덕률 후보) 공약도 나왔다. 서울 조희연 후보는 후드티셔츠 같은 ‘편안한 교복’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진보도 보수도 "무상교육 확대"…달라진 교육감 선거

■ 학생참여권 화두 된 선거
“어른들만의 민주주의는 필요 없다. 직접 투표하는 것이 최고의 민주시민 교육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져나온 청소년들의 외침이다. 특히 시·도교육감 선거는 교육의 ‘수혜자’가 아닌 ‘주체’로서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정치권 논의와 맞물려 참정권을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이번 선거에선 어느 때보다 크고, 서울시교육감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실제로 일부 반영되는 등 관심과 호응도 적지 않았다.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10대들은 여성 참정권 운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서프러제트’ 캠페인을 벌였다. 지난 3월22일부터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소속 활동가들이 18세 선거권 보장을 주장하면서 삭발을 하고 43일간 천막농성을 했다. 이런 목소리들은 작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진보진영 교육감 후보 단일화 추진기구인 ‘2018 서울촛불교육감추진위원회’가 시민경선단 참여자격을 18세 이상에서 13세 이상으로 낮춘 것이다. 중학생들도 서울의 교육정책을 이끌 후보를 뽑는 데 한 표를 던졌다. 전국의 교육감 예비후보 22명이 “우리는 청소년에 의해 뽑힌 최초의 교육감이 되고 싶다”며 법 개정을 촉구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청소년을 대표하는 가상 후보도 등장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촛불청소년연대는 ‘기호 0번 청소년’의 교육감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청소년들이 바라는 공약을 직접 알리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이들은 이후 서울 망원동, 신림동 등 곳곳에서 ‘0번 후보 유세’를 이어가고 있다.

선거법이 개정됐다면 당장 이번 선거부터 18세 유권자들도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야가 합의를 이루지 못한 탓에 허사가 되고 말았다. 선거연령을 낮추는 내용이 담긴 대통령 개헌안도 폐기 수순으로 향했다. 사회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은데, 이들에게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것은 여전히 ‘어른들’의 집합소인 국회에 달려 있다. 촛불청소년연대는 기성세대의 동참과 문제제기를 호소하기 위해 ‘교복 입고 투표하기 인증샷’ 캠페인을 시작했다. 오는 9일에는 홍대 부근에서 ‘청소년 유세 퍼레이드’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