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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법 논란]이남신 “저임금 비정규직의 마지노선 복리후생비는 건들지 말았어야”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를 염두에 뒀다면 복리후생비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되는 ‘마지노선’이었다”며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타격을 줄 것이고, 앞으로 여러 편법이 등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가 출발도 못한 상황에서 그나마 유일한 ‘대화’로 남아 있던 최저임금위원회조차 파행을 겪게 됐다면서 “정부가 노동계를 설득하려면 경제구조 자체를 바꾸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이 7일 서울 영등포 노동센터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이 소장은 7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 25%, 복리후생비 7%를 집어넣겠다고 했지만 이런 숫자 자체가 무노조 사업장 노동자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올해 최저임금이 16.4% 오르자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이미 상여금을 기본급에 포함시킨 경우가 많은데, 법마저 개정됐으니 앞으로 사용주들이 바뀐 법 규정을 최악의 방식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복리후생비에 포함되는 식비와 차비, 식사 제공 등 현물로 지급되던 것들에 여러 가지 편법을 동원할 것이라는 우려다.

산입범위, 최저임금에 영향 지대...‘무노조 사업장’ 편법 사용 우려
국회가 최저임금위 역할 빼앗아...대통령 거부권 준하는 대책 필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상여금 지급 시기 등 취업규칙을 바꿀 때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못하게 한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이 이번 법 개정으로 깨졌다고 반발한다. 이 소장 역시 “민감한 사안이므로 실태조사를 충분히 하고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쳤어야 그에 맞는 후속 대책도 내놓을 텐데 졸속으로 처리하다보니 제대로 안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격무에 시달리는 근로감독관들은 최저임금 위반도 제대로 시정하지 못하는 판인데 앞으로 벌어질 편법들을 바로잡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난망하다”면서 “특히 약한 고리인 저임금 노동자들이 입을 피해는 가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대화 구상이 암초를 만난 것에 대해 “국회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정한 것부터가 문제”라고 진단했다. 산입범위는 최저임금 인상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정해야 할 인상률을 사실상 국회가 결정한 꼴이 됐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위는 현재 노동 의제와 관련된 유일한 사회적 대화기구이지만 양대 노총은 법 개정에 반발해 불참을 선언했다. 지난해 새 정부 출범 이후 대화를 복원하겠다고 판을 벌여놓고는 오히려 판을 엎어버린 꼴이 됐다.

정부, 테이블에 노동계 앉히려면 경제구조 개혁 의지 보여줘야

이 소장은 “사회적 대화의 마중물이 최저임금이었는데 오히려 최저임금 때문에 사회적 대화가 중단되게 됐다”면서 “이번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선 대통령 거부권에 준하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산입범위를 넓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깎은 것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인상폭을 더욱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 1만원이 아니라 1만7000원까지는 올라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 소장은 “노동계가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려면 명분이 필요할 텐데 결국 요구에 맞춰서 인상률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동계에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부정의한 경제구조 자체를 바꾸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도 있다”고 이 소장은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산입범위 논란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도 난감해졌지만, 영세 자영업자도 불법사용주가 되는 이상한 상황이 돼버렸다. 영세 자영업자도 대기업과의 관계에서는 ‘을’이다. 결국 높은 임대료 문제, 프랜차이즈 갑질 등 재벌 중심 경제구조를 바꾸는 개혁을 병행해야 문제가 풀린다는 의미다.

이 소장은 “최근 정부가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같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더 근본적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덜어주는 패키지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최저임금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큰 틀에서 신뢰를 회복할 중장기 대책을 제시해 이번 논란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1만원’은 시대적 요구이므로 “노사정 모두의 공동책임이 있다”면서 “산입범위 때문에 저임금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사회적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